2017년 화음 프로젝트 페스티벌 ‘백남준과 TV가든’
12월 2일 토요일 오후 2시 백남준아트센터
오늘, 어제를 살려야 한다.
예술가 백남준은 어떤 자취를 남겼는가? 음악인들에게 신(‘God’)만큼의 권위를 갖는 그라우트(‘Grout’)의 <서양음악사> 개정 7판은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플럭서스 운동의 중심적 인물 가운데 한 명인 한국 출신의 백남준(1932~2006)은 여러 대의 텔레비전으로 전시회를 기획했는데, 이 전시회는 음악, 비디오, 행위예술 및 조각을 혼합한 것이었다.” 이 무미건조한 평가가 전부다.
플럭서스(Fluxus)라는 말은 ‘끊임없는 변화’, ‘움직임’, ‘흐름’을 뜻하는 라틴어에서 유래됐다. 이것은 살아있는 것들의 중요한 특징이다. 죽어있는 것들은 더 이상 자극하지도, 반응하지도 않는다. 한 대학교 도서관 로비에는 백남준의 TV 첼로가 놓여 있다. 그 작품은 정적인 도서관에 생동감과 색감을 생기를 불어넣는다. 그런데 많은 시간 그 작품의 전원은 꺼져 있다. 전원이 꺼진 TV는 우리에게 어떤 새로운 경험을 주지 못한다. 그때의 그 작품은 단지 구석의 한 자리를 차지하는 과거의 유물처럼 보일 뿐이다.
플럭서스의 중요한 정신이 기존의 예술을 거부하고 새로운 예술을 창조하는 것이다. 앞의 두 가지 예는 생전에 거침없는 도전과 실험정신으로 끊임없이 새로운 예술을 창작한 예술가에 대한 평가와 그의 작품에 대한 관리로 적절해보이지 않는다. 백남준은 플럭서스에도 매어 있지 않았다. 그는 그것을 통과하면서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개척했다.
백남준의 예술적 선언과 선전포고
전쟁으로 폐허가 된 한국에서 유럽으로 간 젊은 백남준은 유럽 예술세계의 권위에 주눅 들거나 굴복하지 않았다. 서른 살의 백남준은 서구 중심주의의 예술계에 “황색 재앙, 그것이 바로 나다.”라고 대담하게 선언했다. 그에게는 “유럽의 음악과 미술의 수준에 대해서 실망했다.”라고 말하며, 자신의 예술 세계를 펼쳐 보일 수 있는 패기가 있었다. 백남준은 또한 이렇게 말했다. “세계의 역사는 우리에게 가르쳐준다. 게임에서 이길 수 없다면, 그 규칙을 바꿔라.” 이것은 일종의 선전포고이다. 그는 ‘아시아에서 온 문화 테러리스트’라는 별명답게 자신이 아버지처럼 생각했던 예술가 존 케이지의 넥타이를 자르는 퍼포먼스를 하고, 서양의 고전 예술을 상징하는 바이올린을 끌고 다니거나 내리쳐서 파괴했다.
기존의 권위로 상징되는 아버지의 세계를 부셔버리지 못하면 독자적인 세계를 창조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그는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파격은 단순히 파괴 그 자체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예술에서 서구중심주의를 과감히 깨뜨리고 미디어아트와 같은 새로운 예술 영역을 창조한 백남준의 도전과 실험정신은 오늘, 여전히 살아있는가? 한 예술가의 작품들의 숨겨진 의미를 드러내고, 잊힌 가치를 찾아내는 것은 그 의미와 가치를 아는 이들만이 할 수 있다. 화음 프로젝트 페스티벌의 ‘백남준과 TV가든’은 이것에 대한 창조적인 대답이 될 수 있을까?
창조의 발자취를 따라
이날 공연은 백남준의 작품과, 그의 작품에서 받은 영감으로 창작한 3명의 작곡가의 작품이 연주됐다. 작품마다 새로운 무대가 만들어졌는데, 관객들은 이 4개의 작품이 연주되는 순서를 따라 이동하면서 감상했다. 이러한 방식은 관객들이 공연의 흐름에 동참하는 느낌을 자연스럽게 가질 수 있게 했다. 또한 일반 연주 무대와 달리 연주자와 관객의 거리가 매우 가까워서 함께 호흡하는 느낌을 강화시켰다. 전체 공연 시간도 약 1시간가량으로 길지 않아서, 관객들이 흥미와 긴장의 끈을 끝까지 놓치지 않도록 구성했다.
첫 작품은 화음쳄버오케스트라의 전속작곡가인 백영은의 <비올라와 타악기를 위한 “TV Garden”>이었다. 위촉작인 이 곡은 무성한 초록의 수풀 사이에서 여러 대의 TV가 화려한 꽃처럼 피어있는 백남준의 <TV 정원>에서 연주됐다. 작곡가는 이 작품에서 “이 땅의 모든 생명체들은 저마다의 존재 이유를 가지고 있다. 그들이 살아 있는 동안 겪어내야 하는 것들의 무게는...?”이라고 질문하면서 “백남준님의 부딪히고 감당했던 시간들”에 대해서 느껴지는 것들을 담아냈다고 말했다.
두 대의 타악기가 경쾌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을 때 무대의 중심부로 들어온 비올라는 이 흐름을 거칠게 흔들었다. 비올라는 마치 외골수처럼 자신의 목소리를 고집스럽게 주장했는데, 이에 따라 타악기들도 점점 격하게 반응하면서 긴장이 고조됐다. 여기에서는 자연과 전자매체, 타악기와 비올라라는 서로 다른 요소들은 어설픈 화합을 시도하지 않았다. 이들은 다만 각각 있는 그대로 자신의 특성을 드러내면서 공존했다. 그런데 이러한 이질적인 요소들의 공존은 각 존재를 개별적으로 더 생생하게 인식하게 만들었다. 대비를 통한 독특한 조화가 인상적이었다. TV가 있는 정원이 그러하듯이, 이러한 공존 자체가 일종의 충돌인 것이다.
다음 작품은 백남준의 <One for Violin Solo>로, 바이올린을 서서히 들어 올린 후에 책상에 단번에 내려치는 작품이었다. 연주자 에르완 리사는 애조 띤 비가를 먼저 연주한 후에, 활을 내려놓았다. 팽팽한 긴장감과 숨 막히는 침묵 속에서 바이올린을 양손으로 잡고 머리 위까지 올린 그는 바이올린을 책상에 강하게 내려쳤다. 바이올린이 책상을 타격하면서 낸 소리는 강렬했다. 다만 예상과 달리(!) 바이올린은 부서지지 않았다. 마치 도끼가 된 듯한 바이올린을 보면서 카프카의 말이 생각났다. “우리가 읽는 책이 우리 머리를 주먹으로 한 대 쳐서 우리를 잠에서 깨우지 않는다면 도대체 왜 우리가 그 책을 읽는 거지? 책이란 무릇, 우리 안에 있는 꽁꽁 얼어버린 바다를 깨트려 버리는 도끼가 아니면 안 되는 거야.” 카프카처럼 백남준 역시 이 작품을 통해 굳어버린 고정관념을 치고, 얼어붙은 인식의 바다를 깨트리고자 했을 것이다. 바이올린은 서양 고전 음악의 확고한 상징과도 같은 존재이다. 충격을 통한 인식의 전환이 이 지점에서 이루어진다. 바이올린의 연주뿐만이 아니라, 숨 막히는 긴 침묵과 바이올린이 내는 강한 타격음도 또한 ‘연주’라는 것을.
다음 두 작품은 공모 당선작품이었다. 먼저 작곡가 전현석은 백남준의 <존 케이지에 대한 경의>(1958~1962)에서 아이디어를 얻어서 <Diffused Dots>라는 작품을 선보였다. 존 케이지는 백남준의 예술적 사고에 강력한 영향력을 끼친 존재이다. 백남준은 다름슈타트에서 케이지를 만난 1958년을 기점으로 1957년이 기원 전 1년이 되었다고 표현했다. 케이지는 백남준에게 환경이 만들어내는 소리나 소음도 음악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을 가져다주었다. 예술적 소리에 대한 인식의 결정적인 전환이었다(앞의 <One for violin solo>는 1962년 작품이다). <존 케이지에 대한 경의>는 거리의 소음, 여자의 비명 등 일상의 소리를 담아서 소리의 틀을 깨고 예술의 경계를 확장시킨 케이지에 대한 경외감을 표현했다.
작곡가 전현석은 액자 안에 4개의 릴 테이프와 릴 테이프에서 나온 테이프들이 액자 아래에 엉켜서 쌓여 있는 이 작품을 보고 “공간에 갇혀있는 현악사중주의 이미지를 지속적으로 연상”했다고 밝혔다. 연주를 위해 4대의 현악기(2대의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는 사각형을 이루는 4개의 꼭짓점처럼 멀리 떨어져서 자리를 잡았다. 관객들은 <Diffused Dots>가 연주되는 동안 연주자들이 만든 일종의 가상 액자 같은 공간 안에서 작곡가가 창작 의도에서 밝힌, “불명료하고 거친 질감을 가진 소리객체들은 미술관 공간 안에서 끊임없이 설치된 소리를 넘어 움직이는 소리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경험할 수 있었다. 연주자들이 각 지점에서 만드는 음들이 울림을 통해 선처럼 이어지는 공간 안에서 자유롭게 움직이면서 음향의 변화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다.
마지막 작품은 작곡가 김신의 <Mouth Music: Extraordinary Phenomenon>이었다. 이것은 백남준의 <<음악의 전시 – 전자 텔레비전>: 입으로 듣는 음악>(1963)에서 영감을 받아 창작한 곡이다. 백남준은 이 창작물에서 두 가지 개념을 제시했다. 하나는 청각예술인 음악을 연주가 아닌 눈으로 보는 전시로 표현했으며, 다른 하나는 소리를 시각화 하는 사운드 아트를 넘어서 입으로 음악을 듣는 개념을 형상화했다. 이 작품에서 백남준은 레코드판 위에 입으로 무는 청취도구를 올려놓고 입으로 음악을 듣게 했다. 이 청취도구는 사실 모조 페니스로서, 청취의 개념에 대한 도전과 더불어 전통 음악계에서 금기시 하는 성적인 소재를 사용한 도발도 파격적이다(백남준이 성을 소재로 한 대담한 작품들을 선보인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일례로 10명의 남성들이 거대한 흰 종이 뒤에서 한 명씩 성기로 종이를 찢는 퍼포먼스에 백남준의 <젊은 페니스를 위한 교향곡>(1962)이라고 명명했다).
작곡가 김신은 <Mouth Music: Extraordinary Phenomenon>에서 플루트, 알토 플루트, 클라리넷, 베이스 클라리넷 구성의 관악기 앙상블을 만들었다. 작곡가는 이 작품을 통해 관객이 새로운 소리의 세계를 상상할 수 있기를 희망하며 이렇게 설명했다. 하나는 “당시 백남준의 머릿속에서 들린 소리”로, 저 도구를 물고 있을 때의 머릿속(또는 입 속)에서 들렸을 소리이며, 또 하나는 “작품을 진행하던 도중 외적으로 들린 소리”로, 도구를 입에 무는 순간이나 도구를 물고 숨을 쉴 때 도구와 입 사이의 바람의 마찰음 등을 상상해보는 것이다. 작곡가는 “각 악기가 낼 수 있는 보편적인 음향”을 통해 “머릿속에서 들리는 소리를 묘사”했으며, “바람소리만 나게끔 연주하는 주법이나 바람을 불지 않고 운지법으로만 연주하는 주법 등”의 “현대적 주법”을 통해 “외부적으로 들리는 소리를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이 작품은 4명의 연주자와 지휘자가 한 자리에 모여서 연주했는데, 관객들 역시 한 곳에 모여서 모든 움직임을 멈추고 소리에만 집중했다. 귀에 직접적으로 들리는 소리와 함께 머릿속에서 만들어지는 상상의 소리를 듣기 위한 진지한 청취였다. 그 순간 모두가 함께 음악적인 소리의 개념을 확장시켜 가게 된다. 이 작품은 작품이 지닌 독특한 의미를 재고하게 함으로써 음악에 대한 새로운 인식으로 이끌도록 유도했다.
오늘, 내일을 살아야 한다.
이번 공연에서 작품에 따라서 관객들은 무엇에 집중해야 하는지 자연스럽게 판단하고 함께 청취의 장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웠다. 연주되는 순서에 따라 관객이 함께 이동하면서 감상하도록 한 방식은 다가가기 힘든 추상예술에 가깝게 다가가도록 하는데 상당히 효과적이었다. 실제 악기의 소리, 악기를 내려칠 때 발생하는 타격음, 긴장된 침묵과 주변의 소음, 그리고 머릿속 상상의 소리까지 이날 백남준의 TV 가든에서는 다양한 소리를 따라 거니는 유쾌한 산책이 이루어졌다.
그렇지만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백남준이 시도했던 충격적인 ‘시작’들은 이미 어제의 역사가 됐기 때문이다. 변화의 대상이 전통이라면 그것에 균열을 일으키는 일은 결코 부드러운 것이 될 수가 없다.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기존의 전통과 권위는 쉽게 부셔지지 않는다. 이날 강력한 타격에도 불구하고 부셔지지 않은 바이올린처럼. 소리의 장벽은 아주 견고하다. 그래서 창조를 위한 파괴가 때로는 불가피하다. 또한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고 해도 곧 그것은 익숙함과 관습으로 굳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새로운 시작을 꿈꾼다면 백남준이 하지 못했던 시도들을 해야 한다. 그 여정은 산책이라기보다는 돌파에 가까울 것이다.
백남준의 작품들은 고정관념으로 막힌 소통의 장벽을 허물고 새로운 비전들을 제시한다는 특징이 있다. “백남준은 기존의 심미적 관념에 대한 반란으로 성공적인 삶을 보여준 위대한 예술가다. 그는 새로운 세대의 도전을 이해했다.” 2006년, 백남준의 죽음을 애도하며 <뉴욕타임즈>는 이렇게 썼다. 백남준은 2012년까지 살기를 염원했다. 존 케이지 탄생 100주년 기념 퍼포먼스를 하기를 원했던 것이다. 생전에 예술의 미래를 개척했던 그들은 이제 모두 세상을 떠났다. 현재 백남준아트센터에는 <백남준의 작업실>이 있다. 그곳에는 백남준의 손길과 숨결이 담겨있는 작업 도구들로 가득하다. 그렇지만 이제 그는 그것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 창조적인 대안을 제시하며 새로운 내일을 여는 것은 “새로운 세대의 도전을 이해”하는 오늘의 예술가들의 몫이다. 새로운 비전으로 사는 자만이 오늘, 내일의 역사를 쓸 수 있다.
서주원 (bwv10@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