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가 백남준 되찾기
2017 화음 프로젝트 페스티벌 Day 7 ‘백남준과 TV가든’ 비평
(12월 2일(토) 오후 2시 백남준아트센터)
글|송주호(음악칼럼니스트)
우리가 알고 있는 백남준
우리에게 백남준(1932-2006)은 비디오 아티스트로 잘 알려져 있다. 여기에 좀 더 붙여서 ‘비디오 아티스트의 창시자’라고 칭하기도 한다. 그의 작업이 대중적으로 알려진 것이 주로 미국에서 작업한 TV 혹은 네온등을 활용한 시각예술 작품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형형색색의 이미지들이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오는 그의 TV 작품들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충분했다. 국내에도 용인 소재의 백남준아트센터와 동묘역 부근의 백남준기념관뿐만 아니라 과천현대미술관 중앙에 있는 ‘다다익선’,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 설치되어있는 ‘호랑이는 살아 있다-월금, 첼로’, 인터컨티넨탈 서울코엑스 호텔 한 구석에 보석같이 빛나고 있는 ‘파라다이스 나우’ 등 크고 작은 여러 TV 작품들이 뜻밖의 장소에 설치되어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끈다. 많은 분들이 알고 있듯이, 미술사에서도 백남준은 최초의 비디오 아티스트 중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기술과 예술을 접목시킨 파이오니어로서, 그의 기발한 아이디어와 과감한 실행력, 끝이 보이지 않는 스케일을 생각할 때 현재도 그에 필적하는 예술가를 찾기 어려울 정도이다.
그런데 백남준이 예술가로서 주목을 받고 유명해진 것은 그 이전에 독일과 뉴욕에서 큰 화제를 뿌렸던 플럭서스 활동 때문이었다. 바이올린을 부수고, 바이올린에 줄을 매달아 끌면서 거리를 활보하며, 존 케이지의 넥타이를 자르고, 머리에 잉크를 묻혀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이러한 활동들은 고상한 이상을 쫒는 예술 활동에 반하여 일상의 모습을 통해 예술을 이룩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행위로서, 조지 머추너스(George Maciunas: 1931-1978)의 플럭서스 메니페스토와 관련이 있다. 이러한 활동으로 그는 1950년대 유럽에서 ‘아시아에서 온 문화테러리스트’라는 기막힌 평가를 받기도 했다.
사실 백남준의 젊을 때 꿈은 음악가였다. 1940년대 서울에서 피아노와 작곡을 배웠는데, 그의 작곡 선생은 당시 서울에서 최고의 명성을 누렸던 김순남과 이건우였다. 한반도에서 최고의 엘리트 코스를 밟았던 것이다. 1950년대에 일본으로 건너가 음악 공부를 하면서 쇤베르크에 대한 논문을 썼으며, 1956년에 독일로 유학을 떠나 프라이부르크 음악원에서 당시 지존의 음렬작곡가였던 볼프강 포르트너(Wolfgang Fortner: 1907-1987)를 사사하였고, 새로운 음악의 산실 다름슈타트 국제 신음악 하계강좌에 참석했다. 이 때 베를린에서 유학하던 윤이상과 대화하는 기념비적인 사진을 남긴 것을 많은 분들이 알고 있다. 하지만 이 두 음악가의 만남은 이후 아무런 진전도 없었다. 이곳에서 존 케이지를 만나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뜬 탓이다.
음악가 백남준
이러한 음악적 배경은 평생의 작업에 큰 영향을 끼쳤다. 플럭서스 운동에 참여했을 때 바이올린, 피아노 등 음악적 요소 혹은 소품을 자주 사용했고, TV 작업에 대해서도 “1200만개의 건반을 가진 피아노를 이용하여 피아노 협주곡을 작곡하는 것과 같다”(‘Videa 'n' Videology’: 1974)고 말하며 음악에 비유했다. 피아노를 사용한 퍼포먼스는 그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계속되었다. 그래서 그는 ‘모든 것의 음악가’라고 해도 틀림이 없다. 소리를 소재로 하는 음악이 공기라는 매질을 타고 청각기관에 감지되는 파장의 연속적 집합이라고 할 때, 백남준의 음악이 갖는 연속적 파장은 소리뿐만 아니라 공간을 가로질러 시각기관에 감지되는 종류의 것으로 확장된 것이다, 따라서 그의 작품은 운동성과 시간성, 반복과 변주, 색채 등 작품에 내재된 음악적 특징을 간파하는 것에서 본연의 감상이 시작된다. 그리고 이에 대한 감상자의 적절한 대응을 통해 작품이 완성된다. 따라서 그에게 있어서 작품은 감상자에게 충격을 주어 가만히 있지 못하도록 해야 하는 임무가 있다. “나는 음악의 존재론적 형식을 바꾸기를 희망한다 바꿔야 한다. ... 나의 액션뮤직에서는 소리와 그 밖의 것들을 움직이고, 관객은 나에게 공격당한다.” (‘New Ontology of Music’, 1963)
그의 교향곡 세트는 이러한 특징이 표면적으로 드러난 한 예이다. 그는 작곡하는 것을 깜박 잊은(!) 3번을 포함하여 모두 여섯 개의 교향곡을 만들었다. (내가 알지 못한 교향곡이 더 있을지도 모른다.) 이 음악들은 관객을 다양한 방법으로 공격하며, 감상자에게 이에 대응된 어떤 행위를 기대한다. 이 작품들은 음악의 제목을 가지고 음악적 개념으로 만들어진 것이며, 그 결과물은 시각과 청각을 동시에 자극한다. 그리고 감상자는 수동적 감상을 넘어 충동적 행위로 작품에 참여한다. 이렇게 경계가 허물어진 감각의 공존을 유도하여 특정 장르에 넣기 곤란한 작품들을 ‘간매체’(inter-media)라고 통칭하기도 한다.
하지만 미술의 영역이 되어버린 그이기에, 아직까지도 음악가로서의 백남준은 거의 논의가 되고 있지 않는 상태이다. 그의 ‘음악 작품’ 또한 정리되지 못하고 있다. 미국 작곡가 데이빗 코프(David Cope: *1941)는 그의 책 ‘현대 음악 작곡법’에서 ‘반음악’(anti-music)이라는 장르로 백남준을 소개하고 있는데, 그를 음악가로서 다룬 보기 드문 서적 중 하나이다.
음악으로 백남준 찾기
미술과 음악의 접점을 탐구하는 화음쳄버오케스트라는 백남준아트센터에서 열린 이번 공연에서 백남준을 주제로 삼았다. 여기에는 단순히 백남준을 미술가로 보는 시각을 넘어, 이렇게 작품 속에 감춰진 백남준의 음악을 음악으로 찾아보자는 의도를 갖고 있다. 모든 감각기관으로 감지하는 그의 음악을 오늘의 작곡가들의 소리에 투영해보는 것이다. 이러한 음악들은 백남준의 작품에 대한 작곡가의 감상문이기도 하며, 비참여적 감상자에게 백남준으로의 참여를 이끈다는 점에서 ‘간작품’(inter-opera)을 지향한다.
화음쳄버오케스트라는 이 공연을 위해 공모를 진행했으며, 이를 통해 두 명의 작곡가의 작품, 전현석의 <Diffused Dots>와 김신의 <Mouth Music: Extraordinary Phenomenon>을 선정했다. 그리고 이 단체의 전속작곡가인 백영은(단국대학교 작곡과 교수)의 위촉작 <TV Garden>이 프로그램에 포함되었다.
첫 곡은 위촉작 비올라와 두 명의 타악기 연주자를 위한 <TV Garden>으로 시작되었다. 작곡자는 이 작품에 대해 “백남준님의 부딪히고 감당했던 시간들”에 대한 느낌을 담았다고 말한다. 백남준아트센터에 들어서자마자 가장 먼저 눈에 띠는 ‘TV정원’은 TV는 현대인에게 자연과 같은 존재가 되었음을 말한다. 과거에 주변의 자연 속에서 흔히 들었을 바람소리와 새소리, 그리고 각종 동물 소리는 이제 멀티미디어에서 나오는 소리로 바뀌었다. 그리고 우리의 삶의 일부가 되었다. 백남준의 작품은 바라보고 있는 방향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반대편의 TV에서 나는 소리도 청취된다는 점에서, 백영은의 작품은 앞에서, 멀리서, 그리고 뒤에서 연주를 시작하여 관객을 감싸는 것은 ‘TV정원’의 역상이 된다. 그들은 여전히 각자의 음악이지만, 관객 앞으로 모여 대위적으로 뒤섞이는 것은 음악의 관점으로의 이행이다. 밝은 음색의 타악기들과 동양적 음체계가 연상되는 비올라의 선율은 그렇게 무게를 잡지는 않는데, 이것은 백남준의 진지하지 않은 이미지와 오버랩 된다.
다음으로는 장소를 갤러리 입구로 옮겨 백남준의 <One for Violin Solo>가 연주되었다. 이 곡은 백남준의 유명한 악기 퍼포먼스 중 하나로, 바이올린을 천천히 들어 올린 후 강하게 테이블에 내리쳐 부순다. 매우 짧은 순간이지만 굉장한 임팩트를 주는 작품으로서, 최근까지도 여러 나라의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재연되었다. 이번 공연에서는 프랑스 출신의 비올리스트이자 수원대 교수로 재직 중인 에르완 리샤가 연주를 맡았다. 그는 특이하게도 옛 스타일의 엘레지를 연주하며 천천히 등장했다. 그가 옛 음악을 연주한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이 작품은 기획 단계부터 하기로 결정했지만 프로그램에는 기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참석자들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가 옛 음악을 연주하며 등장하는 것 또한 전혀 예상치 못한 충격을 더욱 강화하기 위한 장치일 수 있고, 혹은 이제 그 생을 마감할 악기에 대한 레퀴엠일 수도 있다. 어쨌든 그가 연주를 멈추고 악기를 집어 들었을 때, 이 연주자가 무엇을 하려는지 모든 관객이 알아차렸지만 이미 늦었다. 그들은 충격을 온 감각으로 체험했다. 이 작품이 처음 공연된 것은 1962년으로, 반백년이 넘은 지금도 여전히 충격적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당분간 충격적일 것이다. 누군가 죽임을 당하는 순간을 직접 목격한 것처럼.
다시 자리를 옮겨 갤러리 한복판에서 공모 당선작인 전현석의 <Diffused Dots>이 연주되었다. 그는 백남준의 ‘존 케이지에 대한 경의’(1958-1962)라는 작품으로부터 아이디어를 얻었다. 사실 이 작품은 백남준이 사전 협의 없이 자리에 참석한 존 케이지의 넥타이를 자른 당돌한 사건으로 유명한 퍼포먼스지만, 서로 다른 양의 테이프가 감겨있는 네 개의 테이프 릴에게도 같은 제목이 붙어있다. 이 테이프에 무엇이 기록되어있는지 알 수 없지만, 그는 이 네 개의 테이프 릴로부터 네 명의 현악 연주자를 떠올렸다. 여기에 음향 공간에 대한 그의 관심이 더해져, 갤러리의 네 귀퉁이에 각 연주자가 배치되는 것으로 구현되었다. 이렇게 관객은 작품 속에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멈춰있는 테이프 릴이 돌듯이 그들은 연주를 시작했고, 이로써 그 순간 내가 세상의 중심이 된다. 회전하는 음악은 나의 넥타이를 자르려 하는 것인가? 다행히도 나는 넥타이를 하고 있지는 않았다. 아차, 목도리는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음악은 목도리에는 관심 없는 듯, 공간을 유영하고 ‘diffused’ 되었다.
마지막 작품은 역시 공모 당선작인 김신의 <Mouth Music: Extraordinary Phenomenon>이 연주되었다. 이 곡은 플루트와 베이스 플루트, 클라리넷, 베이스 클라리넷의 독특한 목관 사중주곡으로, 이것은 백남준의 ‘입으로 듣는 음악’(1963)에서 힌트를 얻은 것이다. 백남준의 이 작품에서 소리를 내는 입은 피부를 통해 파장을 느끼는 기관으로 변모한다. 김신은 이것을 다시 거꾸로 치환하여 입이 소리를 내도록 한다. 그렇다면 무슨 소리를 내야 하는가? 작곡자는 이 작품으로부터 두 가지 소리를 상상한다. 하나는 “당시 백남준의 머릿속에서 들린 소리”이다. 취구로 바람을 불어서 나는 소리가 많이 차지하고 있는 것은 이러한 이유이다. 또 하나는 “작품을 진행하던 도중 외적으로 들린 소리”이다. 구름과 같이 피어오르는 소음 사이로 머리를 내미는 음정들이 그것이다. 여기서 소음과 음악의 혼재가 발생하며, 종종 그 경계는 분명하지 않다. 소음들은 레코드판에 기록되었을 대로 매우 질서정연하고 구체적인 리듬 위에서 움직이며, 음들이 만드는 멜로디는 통제하기 어려웠을 바늘을 타고 알 수 없는 방향으로 흐른다. 김신의 재구성을 통해 우리는 그 때의 백남준이 된다.
앞으로 계속
이 작품들이 충분히 간작품적인 특징을 획득했는지에 대해서는 섣불리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소극적인 관객을 움직이게 했다는 것 자체로 적지 않은 의미가 있다. 이제 청각과 시각을 넘어 새로운 감각을 일깨우는 시도가 보다 적극적으로 계속되어야 하며, 이로써 백남준의 작품을 넘어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야 한다. 이를 위해 화음쳄버오케스트라는 ‘畵’와 ‘音’이라는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알 밖으로 나오기 위해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 그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Demian’, Hermann Hes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