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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

[2022 화음프로젝트 아카데미 실험 : Documentary Nostalgia] 새로운 미래에 다가간 발걸음
송주호 / 2022-02-23 / HIT : 601

새로운 미래에 다가간 발걸음

 송주호

 

2022 화음프로젝트 아카데미 / 화음챔버오케스트라 실험 시리즈

‘Documentary Nostalgia’

2022년 2월 16일(수) 오후 4:30 울산시립미술관 Theater 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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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년간 진행했던 ‘화음프로젝트 아카데미’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2022년 실험 시리즈로서, 정연두 작가의 영상작품인 <Documentary Nostalgia>(2007)을 상영하고 이 작품에 붙인 장석진의 음악을 연주했다. 지난 2021년 3월 초연에서 큰 호응을 받은 작품으로, 미디어아트에 특화된 울산시립미술관의 개관 기념을 겸하여 다시 한번 무대 상연이 이루어졌다. 우리나라 창작곡의 현실에서는 초연 후 또다시 연주되기가 어려워 작품 보급과 재평가의 기회가 대단히 드문데, 이 작품은 초연 직후 재연을 결정하여 꼼꼼히 검토했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 있는 무대였다.

 

‘만드는’ 세계와 ‘만들어진’ 세계

 

<Documentary Nostalgia>는 작가가 삶 속에서 기억하는 여섯 개의 장면을 재현하는 작품으로, 그 장면을 실제로 구현하는 작업과 만들어진 장면으로 이어진다. 마치 여섯 개의 막으로 이루어진 무대를 백스테이지와 함께 바라보는 것 같다. 이렇게 ‘만드는’ 세계와 ‘만들어진’ 세계가 함께 한다는 것은 우리의 경험에는 매우 어색하다. 보기가 의도된 모습과 보기가 의도되지 않은 모습의 공존은 우리의 드러난 삶 이면의 사생활이 노출된 것과 같은 불편함을 주기도 하고, 아름다움으로 표현된 결과물 뒤의 험난한 뒷이야기를 드러냄으로써 삶에 대한 풍자로 인식되기도 한다. 또한 환상과 현실이 공존함으로써 환상도 현실도 아닌, 혹은 그것이 뒤바뀌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감상자는 상황의 재정의를 내리기 위해 노력한다. 이러한 혼란의 근본은 전체가 하나의 작품임에도, 감상자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여러 세계로 나누어 보는 데 있다. 이렇게 작품과 그 작품에 대한 메타-작품을 함께 보며 메타-메타-작품을 머릿속에서 정리하게끔 하는 이 곤란한 감정도 독특하고, 그러면서도 아방가르드가 아닌 현실적인 장치들로부터 끄집어내어 대중적 접근성을 확보했다는 것도 놀랍다. 이 점이 이 작품을 오해하는 데에 적잖게 일조하고 있기는 하지만, 어쨌든 그 점이 제작한 이후 14년이 지난 작년 공연에서도 여전히 충격을 주었고, 15년이 지난 올해도 상영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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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cumentary Nostalgia>를 연주하는 화음챔버오케스트라


현실의 음악과 이상의 음악

 

그런데 이 작품은 소리 없이 오직 영상만으로 80분 이상 러닝타임을 갖기에, 일반 감상자들은 어느 순간 영상을 보며 소리를 상상하기 시작한다. 작업자들이 움직이는 소리, 갖은 물건들이 부딪히며 내는 소리, 카메라 뒤에서 이들을 지시하는 감독의 소리, 그리고 완성된 장면과 어울리는 어떤 상상의 선율도. 장석진의 음악이 고민해야 할 대상은 사실 영상이 아니라 이러한 감상자들의 상상 속에서 만들어지는 소리들이다. 이와 일치하게 만들어 공감도를 높일 것인가, 아니면 감상자의 레디메이드된 기대감을 무너뜨리고 다른 시각으로 들려줄 것인가? 정연두의 작품이 자신의 경험에서 온 것이듯, 장석진 또한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 둘을 모두 선택했다. 즉, 모두가 공감하는 현실의 음악과, 작곡가가 바라보는 시각을 제시하는 이상의 음악을 구성한다. 이 두 세계의 전환은 영상과 동기화되면서, 여섯 개의 막이 아닌, 열두 개의 장면으로 확대한다. 즉, 추억의 장면을 만드는 과정 자체도 과정이 아닌 결과물로 인식시킨다. 또한 추억 속에 박제되어있는 듯 멈춰있는 장면들에 생동감을 부여함으로써 감상자에게 더 많은 상상력을 자극한다. 초연과 비교하면, 음악의 수를 늘리고 편성을 다양하게 하여 정서의 폭을 확대했으며, 음향적으로 풍부하여 음악 자체의 극적 흐름을 확보했다. 더 나아가 음악이 이미지를 만드는 수준에 이른다. 그렇다면, 그 이미지가 영상의 이미지와 합치하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차이가 있는 것이 좋을까? 공연을 준비하며 가진 회의에서 두 작가는 후자를 선택했다. 그들은, 그들의 작품이 이미 복수의 세계를 갖고 있듯이, 영상과 음악 또한 각자의 세계를 갖기를 원했다. 결국 그 불일치는 온전히 감상자의 몫인데, 감상자들은 그 간극을 자신의 추억으로 메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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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cumentary Nostalgia>를 연주하는 작곡가 장석진 


실감하기

 

이 공연은 공연자들의 의상과 움직임을 통해 프레임에 갇힌 영상을 현실로 연장했다는 점이 특기할 만하다. 미디어아트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는 ‘실감’으로, 감상자가 작품을 가상이 아닌 현실로 지각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것을 ‘몰입’(immersive)라는 단어로 표현하기도 한다. XR(extended reality)이 주목받는 이유는 실감성을 최대로 끌어올림으로써 몰입도를 극대화하기 때문이다. 비용이 많이 들고 기술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방법은 접근하기 쉽지 않더라도, 눈앞의 사각형 프레임이 아닌 시야 전체를 포함하는 확장된 스크린을 통해 실감성을 구현할 수 있기에, 요즘 많은 작가들이 큰 관심을 갖고 있다. 이러한 확장은 15년 전에 만든 영상으로는 불가하지만, 화음챔버오케스트라의 공연에서는 무대에 있는 실제 연주자들로 구현하여 실감성을 확보했다. 작년의 초연에서는 영상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입은 옷과 동일한 작업복을 입는 것으로 그쳐 제한적이었다면, 이번 재연에서는 필자가 아이디어 로서 제안한 연주자들의 동선을 직접 구체화함으로써 더욱 발전시켰다. 이번 재연은 음악 공연의 실감성의 가능성을 확인하고 이를 의미 있게 체험한 뜻깊은 무대였다.

 

 

그다음

 

그렇다면 그다음은 무엇인가? 이번 공연에서 얻은 ‘실감’은 우리 시대를 상징하는 키워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감은 과거에 경험하지 못한 환상을 경험하게 하고, 그 경험은 인류를 새로운 미래로 이끌 힘이 될 것으로 믿는다. 이를 위해 앞서 언급한 몰입형 영상작품과의 협업 혹은 센서를 활용한 실시간 영상 구성 등 다양한 실험적인 시도를 제안한다. 화음챔버오케스트라의 ‘실험’ 시리즈는 이번 공연으로 막을 내렸지만, 실험이 막을 내린 것은 아니기에.  [畵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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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cumentary Nostalgia>를 연주하는 화음챔버오케스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