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화음프로젝트 아카데미: 탐구-현대음악 렉처 콘서트 시리즈 I·II]
귀가 환해지는 시간
70대에 이르러 비로소 한글을 읽게 된 한 여성이 이렇게 표현하는 것을 보았다. “세상이 환해졌어요.” 이제는 거리에 나가서 간판을 읽을 수 있다는 그 여성의 발걸음에 힘이 실렸다. 그녀에게는 대낮의 거리도 암호로 가득한 깜깜한 길이었던 것이다. 이 장면이 떠오른 것은 클래식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다.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한다. 클래식 음악은 유독 사람을 움츠러들게 한다. 클래식은 애호가들조차도 ‘그러나 사실 잘 알지는 못 한다’라는 단서를 붙이게 만드는 이상한 힘이 있다. 게다가 현대음악이라면 좋아하냐 싫어하냐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아느냐 모르냐의 지식의 문제로까지 확장되기 십상이다. 호기심을 가지고 듣는다 하더라도 여전히 많은 감상자들이 음악을 즐기기는커녕 자신의 무지를 직면하는 괴로운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해설이 있는 음악회는 요즘 쉽게 볼 수 있지만, 현대음악은 사실 해설에서 더 나아가 해독이 필요하다고 느껴지는 분야이기도 하다.
이상적인 해설이 있는 음악회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한 음악회에서 기획자와 연주자, 그리고 청중, 이 세 그룹이 비슷한 온도를 공유하는 것 아닐까? 한 방에 있더라도 아랫목은 절절 끓는데 윗목에는 얼음이 언다면 각각의 장소에서 체감되는 온도차가 클 수밖에 없다.
화음챔버오케스트라는 2019년부터 2021년까지 3년 동안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중장기 지원 사업을 젊은 작곡가들과 음악애호가들을 지원하는 기회로 삼았다. 음악가와 감상자 모두의 발전과 교육을 위한 동반성장 프로젝트다. 탐구와 실험 두 범주로 진행되는 이 프로젝트의 탐구 카테고리는 “20세기 이후의 다양한 현대음악의 경향들을 중심으로, 그 개념을 같이하는 고전과 창작음악을 함께 공연”하며 “시대를 관통하는 예술적 본질과 미학을 탐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를 위한 짧은 강연과 연주회가 결합된 렉처 콘서트는 무대와 객석의 온도차를 줄이기 위한 구체적인 실천 방식이다. 2020년 상반기에는 총9개의 주제 중 두 개인 미니멀리즘과 표현주의를 주제로 렉처 콘서트가 행해졌다.
내면을 잠식하는 불안을 조명하다.
현대음악 렉처 콘서트 시리즈 I
가장 기본적인, 그리고 가장 단순한... : 미니멀리즘
2020년 5월 24일(일) 오후5시 LG아트센터
2020년 초부터 전세계적으로 퍼진 감염병의 여파로 몇 번의 연기 끝에 연주가 성사됐다. 무대에 오른 화음챔버에서 여느 때와의 다른 활기와 설렘이 전해졌다. 첫 두 곡은 누구나 쉽게 접했을만한, 그야말로 가장 기본적이고 단순한 작품들이었다. 요한 파헬벨의 ‘카논 D장조’와 에릭 사티의 ‘짐노페디 1번’은 귀 기울여 듣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따라갈 수 있는 선율로 연주회를 부드럽게 열었다. 돌림노래인 ‘카논’은 현악합주로 풍성함이 더해졌고, 피아노 독주곡을 현악 합주로 편곡한 ‘짐노페디’는 영롱한 터치감이 부드러운 현악 사운드로 대체되며 낭만적인 성격이 강해졌다.
이날 연주는 전·후반의 마지막 작품들이 주목할 만했다. 필립 글래스의 ‘교향곡 3번’은 매우 감각적이면서 생동감이 넘쳤다. 단순한 선율, 화성과 리듬의 반복과 변형이 특징인 이 교향곡에서 연주자들은 작품에 강하게 몰입해 역동성을 극대화했다. ‘트루먼쇼’, ‘디 아워스’등의 영화음악으로도 큰 성공을 거둔 글래스의 작품답게 가슴에 파고드는 호소력이 대단했다. 비교적 완만한 속도로 시작해서 후반 악장으로 갈수록 가속이 붙으며 극적 긴장감이 더해졌다. 흔히 음악에서 계속되는 반복은 지루함을 야기하고 극대화되는 긴장감은 해결을 향하는데, 이 작품에서는 반복이 계속적인 흥미를 이끌어냈으며 응축된 긴장감은 그 자체를 즐길 수 있었다. 미니멀리즘 음악의 매력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연주였다. 다양한 감정이 중첩되는 가운데 작품을 이끌고 가던 집요한 반복이 멈췄을 때는 오히려 아쉬움마저 느꼈다. 기존 클래식 교향곡 음악회에서 좀처럼 경험할 수 없는 단순한 반복이 만드는 오묘한 중독성과 무한한 확장성이라는 특별한 정서적 경험의 장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이번 프로젝트의 의미가 빛을 발하는 무대였다.
다음 작품은 스티브 라이시의 ‘두 대의 바이올린과 현을 위한 이중주’였다. 라이시는 필립 글래스와 함께 뉴욕의 미니멀리즘 음악의 대표적 작곡가다(정작 두 사람은 미니멀리즘이 아닌 ‘반복적 구조의 음악’이라는 명칭이 더 적절하다고 했다고 하지만). 이 작품에서 두 대의 바이올린의 선율은 그다지 어울리지 않으며 오히려 약간의 갈등 관계에 있는 듯했다. 끊임없이 추동하고 약동하는 현악 앙상블의 리듬 반주 위에서 이질적인 선율들은 충돌하면서도 청량감 있는 음향을 만들어냈다. 항상성과 낯설음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연주였다. 5분 남짓의 짧은 작품이었지만 감상의 묘미를 충분히 전해주었다.
4개의 작품으로 이루어진 존 애덤스의 ‘진동고리’는 “흔들림과 떨림”과 “찬송하는 무리”가 연주됐다. 연주가 시작되고 조명이 밝아지며 시각과 청각의 조화를 이룬 무대 연출이 효과적이었다. 음이 떨리는 트릴과 트레몰로가 기초가 된 이 작품은 “흔들림과 떨림”에서 음들의 소용돌이를 만들어냈는데 시시각각 흔들리는 미세한 음들의 동요를 대단히 섬세하게 표현했다. 한 가지에 빠져들어 점차 달뜬 상태가 되고 그 끝에서 일종의 황홀경에 이르기까지의 여정이 담긴 듯했다. 화음챔버의 완성도 높은 연주에서 그들의 노고가 새삼 부각됐다. “찬송하는 무리”의 음향은 명상적이었으며 현들의 글리산도는 마치 빛이 비추는 것 같은 효과를 만들어냈다. 화음챔버의 연주와 함께 적요속에서 흔들리는 내면을 관조할 수 있는 시간이 천천히 흘렀다.
이날 초연된 작곡가 장석진의 ‘화음프로젝트 Op.208 카프카:1권’ 역시 내면을 비추는 거울과 같은 작품이면서 이날 연주된 작품 중에서 정서적 표현의 폭이 가장 극대화된 곡이었다. 단순한 동기가 반복되며 느리게 시작하는데 곧 떨쳐지지 않는 상념들이 등장한다. 계속해서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요소들이 더해지고 점차 불안이 증폭돼 막다른 길에 이른다. 그리고 돌연한 단절-침묵. 다시 시작부분의 느린 움직임으로 돌아오지만 그것은 안도감이 아니다. 안간힘을 다 쓴 후의 기진맥진과 같다. 자신의 유능함과 유용성을 증명해야만 하는 생존경쟁에서 불안은 우리의 다른 모든 다양한 감정들을 잠식한다. 카프카의 소설 ‘변신’의 그레고르 잠자는 어느 날 아침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자신이 해충으로 변한 것을 깨닫는다. 가장과 회사원의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된 그는 비정하게 버려진다. 밥벌이를 못하는 순간 밥벌레가 되는 것이다. 끊임없이 자신의 유용함을 증명해야 하는 이러한 불안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우리시대의 수많은 그레고르의 내면을 휘젓는 강한 울림이 있는 작품이었다.
미니멀리즘을 주제로 한 이날 연주회의 주제의 또 다른 한 축은 불안이었다. 단순하기에는 지나치게 복잡해진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불안이 글래스와 라이시, 애덤스, 그리고 장석진의 작품에 이르기까지 요동치고 있었다. 불안정한 현대인의 내면을 비추는 거울과 같은 이 작품들은 수많은 감정 중에서 불안이 두드러지는 볼록거울이었다.
요동치는 마음을 감싸는 온기
현대음악 렉처 콘서트 시리즈 II
마음으로 말하기: 표현주의
2020년 6월 21일(일) 오후5시 LG아트센터
두 번째 시리즈는 질풍노도와 표현주의로 요동치는 마음을 더 깊이 파고들어갔다. 프로그램은 제1빈악파인 하이든의 작품과 제2빈악파 쇤베르크와 베르크의 작품, 그리고 이번 공모에 당선된 작곡가 서유라의 작품이었다. 1772년에 작곡된 하이든의 교향곡 44번은 질풍노도를 음악으로 표현했다. 하이든이 자신의 장례식에 이 작품의 3악장을 연주해줄 것을 부탁한 것에서 작품에 ‘애도’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후반 두 악장(3·4악장)이 연주됐는데, 두 악장은 많은 측면에서 극적 대비를 보였다. 아다지오와 프레스토라는 빠르기의 대비가 먼저 눈에 띄었고, 더 본질적인 것은 각 악장이 담고 있는 감정의 대비였다. 아다지오 3악장은 슬픔의 정서를 다양한 층에서 다루었다. 특별히 무언가를 더하지 않아도 충분히 아름다운 악장이었지만 이날 화음챔버의 연주는 지나치게 조심스러운 느낌이었다. 음표들이 충분한 시간과 공간을 확보하는 아다지오였기 때문에 깊은 울림이 더욱 아쉬웠다. 프레스토 4악장은 거칠고 불안한 감정을 한달음에 쏟아냈다.
다음 연주곡은 알반 베르크의 ‘서정 모음곡’이었다. 베르크는 이 작품을 내연 관계에 있던 한나 푹스-로베틴에게 비밀리에 헌정했다. 원곡은 6악장의 사중주인데, 작곡가 자신이 이 중 2·3·4악장으로 현악 오케스트라를 위한 작품으로 편곡했다. 내적 갈등과 격정을 표현한 이 작품의 연주에서 감정이 더 증폭되어 나타나기를 기대했지만 특별한 감흥이 전달되지 않았다. 불안한 사랑의 끝없는 갈망과 떨림이 작품 전반에 깔려있는데, 그러한 감정이 억제 또는 배제되니 밋밋한 인상을 주었다. ‘당신은 나의 것’이라는 고백이 담긴 3악장 역시 공감을 이끌어내기 어려웠다. 충실한 연주만으로는 심리적 거리감이 메워지지 않는다.
작곡가 서유라의 ‘화음프로젝트 Op.209, Compound’는 이날 세계초연됐다. 복합체라는 의미를 지닌 이 작품에서 작곡가는 복잡하게 얽혀 있는 마음을 모티브로 삼았다. 그녀는 여러 색들이 “서로 ‘어울릴지, 아니면 전혀 ’어울리지 않을지‘에 대한” 고흐의 고민을 상상하며 서로 다른 것들의 대면을 음악적으로 그려냈다. 다양하고 이질적인 것들이 마주하면서 생겨나는 긴장과 갈등은 음색의 변화와 다양한 음악 요소들의 대위적 진행으로 나타났다. 이 작품은 해결이나 해소를 지향하지 않는다. 얽히고설킨 상태를 있는 그대로 바라본다. 엉켜있는 실타래 자체를 대면하는 것이 새로운 관계를 위한 실마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 연주곡인 쇤베르크의 ’정화된 밤‘은 새로운 관계로 전환되는 이 대면을 극적이고 감동적으로 풀어냈다. 이 작품이 완성된 1899년 당시에는 초연이 거부될 정도로 전위적인 작품으로 여겨졌지만 지금은 쇤베르크의 작품 중 접근하기에 가장 쉬운 작품에 속한다. 작품은 데멜의 시를 내용으로 한다. 달이 비치는 숲속에서 두 남녀의 속삭임은 사뭇 충격적이다. 여자는 아이를 배고 있지만 함께 하는 그 남자의 아이가 아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를 들은 남자는 두 사람의 온기가 아이를 정화할 것이라며 자신의 아이인 듯 낳으라고 여자를 감싸준다. 송주호 해설가는 이 부분을 직접 번역하여 낭독하듯 들려주며 연주를 한 편의 연극 같이 느끼도록 길을 터주었다. 화음챔버의 연주는 심각하면서도 함몰되지 않고, 따뜻하면서 희망적이었다. 심연에서부터 정화까지를 아우르는 30여분의 연주시간이 짧게 느껴질 만큼 무수한 감정들을 세밀하고 밀도 있게 표현했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 감정의 몰입도가 떨어지며 승화라기보다는 희석으로 끝맺었다는 것이다.
모두가 주인인 연주회
화음챔버오케스트라의 현대음악 렉처 콘서트 시리즈의 장점들은 단연 돋보인다. 연주에 곁들인 해설이 아닌 음악해설을 전면에 세운 것, 새로운 작품을 창작한 작곡가들에 대한 존중과 예우, 지휘자뿐만 아니라 단원 모두가 함께 인사하며 청중에 대한 예의를 다하는 것 등은 화음 연주회에서 볼 수 있는 훈훈한 광경이다.
그러나 몇 가지 더 생각해볼 지점들이 있다. 화음챔버는 단원 모두가 주인의식을 가지는 것을 지향하는 단체이다. 이 강점은 첫 렉처 콘서트인 미니멀리즘 음악회에서 열정적 연주로 유감없이 발휘됐다. 그러나 표현주의 음악회에서는 다소 미진했다. 특히 쇤베르크의 ‘정화된 밤’에서 온도차가 많이 났다. 이날 연주에는 첼리스트 심준호가 객원으로 함께 했다. 그는 누구보다도 열성적인 태도로 연주의 온도를 높였다. 연주를 잘하는 것과 연주를 통해 열정을 아낌없이 보여주는 것은 다른 문제다. 특별히 이번 표현주의 음악회는 개인적이며 내밀한 내용이 담긴 작품들인 만큼 작곡가의 내면으로 더 깊이 파고들 필요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냉정함을 유지해야 하는 작품이나 연주도 있지만, 질풍노도와 후기낭만에 가까운 작품의 경우 연주자들의 거리감은 온기를 식힐 뿐이다.
화음챔버의 렉처 콘서트 시리즈는 연주자들의 예술적 실험과 완성도만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닌 청중을 지향하는 콘서트이다. 그렇기에 연주회장에서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관객의 역할 역시 중요하다. “감상자들의 집합된 반응이 곧 작곡 예술과 연주 예술 모두에 심원한 영향을 미친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음악의 미래는 감상자들의 손에 달려 있다는 말이 조금도 틀리지 않은 것이다. 감상자들이 진정으로 살아 있다고 말할 수 있을 때만이 음악 역시 진정으로 살아 있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의 작곡가 에런 코플랜드는 ‘음악에서 무엇을 들어낼 것인가’라는 책에서 이같이 감상자들에게 권고했다.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감상 태도는 무대의 연주자들에게 영향을 미치며 더 나아가 연주회의 질적 변화까지 일으킨다. 산만한 청중은 연주회 전체 분위기를 흐트러뜨리는 반면 몰입하는 청중은 최상의 연주회를 만드는 최고의 조력자가 된다.
음악의 사회성은 화음챔버의 핵심가치이다. 화음챔버는 2012년부터 진행해온 쇼스타코비치 챔버 심포니 15곡 전곡 연주 시리즈를 잠시 유보하고 렉처 콘서트 시리즈로 진행하고 있다. 화음챔버의 정신이 새로운 그릇에 담기는 것이다. 연주의 건조함과 청중과의 거리감을 앞으로 어떻게 줄여갈 것인가가 이 시리즈에서 앞으로 해결해 나가야 할 중요한 문제로 보인다. 음악은 사회를 반영하는 동시에 사회에 영향을 준다. 감염병의 유행으로 장기간의 거리두기와 함께 사회 전반이 얼어붙어 있다. 화음챔버의 렉처 시리즈를 통해 이 사회에 온기가 전해지고 마음까지 환해지는 시간이 되기를 기대한다.
서주원 (bwv10@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