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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畵/音.zine vol.2] 음악의 다양한 형식들
안정순 / 2022-06-01 / HIT : 441

음악의 다양한 형식들

안정순(음악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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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흐, 파사칼리아와 푸가 C단조 (BWV 582)

 

 

기악음악 발생과 속성


음악의 추상성은 성악음악보다는 기악음악과 관련된다. 그러나 기악음악이 처음부터 추상적인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아주 실용적인 목적으로 시작되었다. 주로 성악이나 춤 반주를 위해서, 혹은 전례와 같은 행사에 도움을 주는 기능성 음악으로 말이다. 최초의 기악음악은 춤의 리듬을 흉내 내거나 성악의 텍스처를 모방한 데서 비롯되었다. 그러다 점차 실제 춤과는 관계가 없어지고 춤의 리듬만 딴 독립적이고 양식화된 기악음악의 형태로 변모했다. 뿐만 아니라 성악 반주를 시작하기 전 조율을 목적으로 하거나, 본격적인 노래 시작 전 분위기 조성을 위한 즉흥곡들이 생겨났다. 전주곡, 환상곡, 토카타가 바로 이러한 즉흥곡들의 대표적 예들이다. 느린 춤곡의 지속되는 베이스나 반복되는 선율에 변주방식이 더해진 변주곡들도 있다.

 

 

기악음악의 다양한 형식들

 

음악사에서 바로크 시기는 대략 17세기부터 18세기 중반을 가리킨다. 모든 시기가 다 각각의 의미가 있겠지만, 특히 바로크 시기는 ‘일그러진 진주’라는 용어가 주는 기묘함, 변칙, 일탈만큼이나 많은 시도와 변화들이 봇물 터지듯 발생했다. 바로 이 시기에 오페라의 탄생과 더불어 다양한 기악장르 혹은 양식들이 많이 쏟아져 나왔고, 그로인해 기악음악이 성악음악과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비등해졌다. 기악음악은 성악과 춤에서 비롯되었지만 직접적으로 연관을 짓는 게 무색하리만큼 독자적인 길을 걷게 된다. 이렇게 해서 발생한 다양한 양식들로 인해 때때로 우리는 서양음악을 낯설게 느끼기도 한다. 더불어 공통 언어로서의 클래식 음악이 갖는 보편성에 의문이 들기도 한다.

 

바로크 음악을 분류하는 방식은 연주의 규모, 장소, 작곡 양식이 있다. 다양한 음악의 형식들은 작곡 양식에 따라 분류한 것이다. 먼저 즉흥적인 양식으로 토카타, 판타지아, 전주곡이 있고, 모방 대위법의 푸가양식은 푸가, 리체르카레, 카프리치오 등이 있다. 대조적인 부분을 포함하는 모방양식으로 된 곡들은 칸초나, 소나타로 분류된다. 이밖에 여기에 주어진 선율 혹은 베이스를 변주하는 형태인 변주곡을 지칭하는 파르티타, 샤콘느, 파사칼리아가 있고, 실제 춤곡에서 발생했지만 점차 양식화되어 연주와 감상 목적이 된 양식화된 춤곡들을 묶은 모음곡으로 대략 분류할 수 있다.

 

 

춤곡과 변주양식

 

르네상스 시기에는 건강한 남녀 특히 교양인이라면 특히 춤을 잘 추어야 했다. 춤을 통해 서로 관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여 건강하고 신체에 다른 문제가 없는지, 행동이 우아하고 상대에 대한 배려가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당시의 대표적인 커플 댄스로 우아하게 몸을 낮추고 높이는 바스 당스, 느리고 우아한 파반느, 민첩한 스텝과 도약이 요구되는 갈리아르가 있다. 이러한 춤곡을 느리고 빠른 춤을 한 쌍씩 묶어서 작곡했는데 이중 프랑스와 영국에서 유행한 파반느와 갈리아르와, 이탈리아에서 유행한 파사메조와 살타렐로는 대표적인 춤곡의 예들이다. 이들 한 쌍의 곡들은 기본적으로 첫 곡은 느린 춤곡을 이루는 선율로 이뤄지고, 두 번째 곡에서 이를 변주하는 방식이다. 이와 더불어 파사칼리아와 샤콘느는 프레스코발디(Girolamo Frescobaldi, 1583-1643)가 전형화한 대표적인 변주곡으로 3박자 계열의 고집저음(bass ostinato) 위로 변주가 이어지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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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정 바스 당스

 

 

춤 모음곡

 

실제 춤을 반주하던 춤곡은 점차 춤과 분리되어 연주와 감상을 위한 양식화된 춤곡이 되었다. 연주되는 악기도 류트에서 점차 쳄발로로 바뀌게 되고, 이러한 양식화된 춤곡을 여러 개 모아서 만든 모음곡(suite)은 바로크 시대의 대표적 기악형식이 된다. 춤모음곡의 전형은 17세기 중엽 독일의 작곡가 프로베르거(Johann Jakob Froberger, 1616-1667)가 확립한 구성이다. 독일 르네상스 시기의 2박자 계열 보통 빠르기의 알라망드, 프랑스 3박자 계열의 활기찬 쿠랑트, 스페인의 3박자 계열에 두 번째 박에 강세가 있는 느린 사라방드, 영국에 기원을 둔 6/8박 계열의 빠른 리듬인 지그가 기본이다. 알라망드 앞에 주로 전주곡, 신포니아, 토카타와 같은 서곡이 추가되기도 하고, 사라방드와 지그 사이에 미뉴에트, 가보트, 부레, 파스피에 등이 삽입되기도 한다. 모음곡의 끝에 베이스 오스티나토가 지속적으로 반복되며 변주하는 방식의 샤콘느나 파사칼리아로 화려하게 마무리되기도 한다. 바흐(Johann Sebastian Bach, 1685-1750)의 《영국 모음곡》, 《프랑스 모음곡》, 《파르티타》는 잘 알려져 있는 춤 모음곡이다.

 

 

푸가

 

17-18세기 독일을 중심으로 발전한 푸가의 전신은 리체르카레이다. ‘찾다’라는 뜻의 이탈리아어로 류트 연주자들이 조율을 할 때 쓰는 단어이기도 한 리체르카레는 사실 르네상스로 거슬러 올라가 성악의 대표적 장르 모테트와 같은 다성적 텍스처를 그대로 따르고 있는 전주곡의 한 유형이다. 이렇게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푸가는 성악의 폴리포니 양식을 모방한 대표적인 기악곡인 셈이다. 예컨대 3성 푸가의 경우 한 성부에서 주제를 제시하면 다음 성부에서 그 주제를 모방하며 이때 두 선율이 서로 대위법적으로 진행한다. 그 후 나머지 성부에서 원래의 주제가 다시 나오고 다른 성부들은 여기에 대위하여 진행한다. 모든 성부가 주제를 제시한 것까지를 제시부라 한다. 누가 뭐래도 푸가의 대가는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이며, 바흐 이후로도 모차르트, 베토벤으로 이어지며 20세기의 작곡가들에게도 푸가 양식의 사용은 끊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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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흐의 <음악의 헌정>에 실린 6성 푸가

 

 

18세기 중반 이후의 기악음악의 형식들

 

바로크 기악음악의 다양한 양식들이 고전시기에는 유행이 지난 대상으로 치부되면서, 소나타 형식을 갖춘 소나타와 교향곡이 주요한 장르로 부상하였다. 연주규모와 방식에 따라 소나타와 같은 독주에서 협주곡에 이어 교향곡까지 넓은 스펙트럼을 갖추게 된다. 교향곡을 기준으로 하여 상황과 용도에 따른 작품의 텍스처의 두께감에 따라 세레나데, 디베르티멘토 등으로 다르게 불렸다. 실로 다양한 명칭의 음악 형식, 양식, 장르들이 존재하였지만, 소나타와 같은 강력한 흡입력과 포용력을 가진 음악 형식은 다양한 음악 양식들을 흡수하고 융합하고 변형시킨다. 이 시기 이후는 음악의 형식이라고 하면, 2부 형식, 3부 형식, 론도 형식을 떠올린다. 이마저도 소나타 형식 안에서 뒤섞이고 변형된다. 지역과 시대의 역사와 문화를 담고 있는 음악의 다양한 양식들은 점차 작품 안에 토픽들(topics)의 형태로 내면화되었다고 본다.[1] 19세기 이후로는 다양한 장르와 양식들이 융합되고 변주되고 변형되는 과정을 거친다. 이렇게 다양한 양식들이 음악의 형식 속으로 내면화됨과 동시에 여전히 20세기 이후에도 과거 양식이 갖는 특징적 의미를 그대로 사용하는 것도 비일비재하다. 나아가 20세기의 새로운 발명이라 불리는 12음기법도 주제와 변주라는 큰 흐름의 음악 양식의 변천사에 통합되어 설명되기도 하니 이러한 새로운 기법도 분명 과거의 양식과의 조우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기악음악의 추상성과 보편성

 

기악음악의 추상성은 서양음악을 더 보편적으로 보이게 한다. 미국의 비판이론가인 리디아 고어(Lydia Goehr)는 18세기 중반 이후의 음악에 대하여 음악을 지나치게 보편적으로 만들려고 한다고 지적하였다. 바로크 시기 음악의 다양한 형식들은 이러한 음악의 보편성이 18세기 중반이후에나 적용될 법한 제한적 성질의 것임을 보여주고, 오히려 각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담고 있는 특수한 성질을 보여준다. 이러한 음악의 다양한 형식들이 우리에게 낯선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음악이 하나의 문화 현상이라면 그 음악이 담고 있는 사회, 역사, 문화에 대한 이해는 감상자에게 선택이 아닌 필수인 것이다. [畵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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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권송택,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G장조 K.453 (서울: 음악세계, 2010), 16-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