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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畵/音.zine vol.13] 멀게 또 가깝게: 전통음악은 한국의 작곡가들과 어떻게 늘 함께 했는가
이민희 / 2025-03-01 / HIT : 112

멀게 또 가깝게

: 전통음악은 한국의 작곡가들과 어떻게 늘 함께 했는가


이민희

(음악평론가, 음악학박사)


 

꽃 피는 산골이 고향이었던, 그 시절의 한국 작곡가들


  1920~30년의 언저리에서 태어난 많은 이들은 마을 어귀에서, 그리고 어머니와 아버지에게서 전통음악을 들을 수 있었다. 상여가 나가는 소리에서부터 밭을 매며 부르는 노래, 어쩌다 한 번씩 크게 들렸던 굿하는 소리까지. 일상 구석구석에는 삶과 밀착된 음악이 가득했고 그 안에 고유의 장단과 음계가, 그리고 노래를 부르는 독특한 습관이 담겨 있었다. 선창을 하면 함께 따라하고, 가락이 다소 들쑥날쑥해도 한 목소리로 부르던 노래들. 이런 일상의 음악을 들으며 성장한 그 시절의 영민한 작곡가들은 이런 소리를 ‘서양의 기법’과 접목하려 노력했다. 서구의 음악형식을 가져와 오음음계로 된 가락을 붙이기도, 피아노의 반주를 새야화현(완전4도와 장2도 간격의 세 음들의 화음. 예를 들어, 민요 ‘새야 새야’의 첫 세 음을 겹쳐놓은 화음이다.)이라는 전통의 맛이 나는 형태로 바꾸어 보기도 했다.


  예컨대 한국에서 비교적 초기에 서양음악 작곡을 하던 이들은 그들의 삶 안에 녹아있었던 전통음악을 서양음악에 접목해 많은 작품을 내놓았다. 대표적으로 1922년생이었던 나운영 작곡가는 우리의 전통음악에 당대의 최신 음악이었던 서구의 음악에 접목해 선진 음악을 만드는 데 앞장섰다. 그는 해방과 6.25가 닥쳤던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작곡활동을 했는데, 그가 추구하던 민족 음악은 단지 기법의 문제뿐 아니라 한국인의 정체성과 음악이 나아갈 방향에 대한 깊은 고심의 결과였다. 나운영은 한국 고유의 장단이나 6/8, 9/8, 12/8 등의 박자, 붓점리듬, 3연 음표의 리듬 등 전통음악의 요소들을 서구의 체계 안에 능숙하게 펼쳐놓았다. 이런 방식은 후대 한국 작곡가들에게 전형이자 모범으로 자리 잡은 전통음악의 활용법이 되었다. 



담론과 정체성으로의 전통음악


  1980년대에 들어 한국은 고도의 경제성장기를 맞게 되었다. 국제무대에 ‘한국’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드러내야 할 일도 많아졌다. 1986년의 아시안게임과 1988년의 서울올림픽은 이러한 분위기를 가속화했다. 음악인들은 세계인들과 만나는 자리에서 들려줄 ‘우리의’ 음악에 대해 고민했고,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라는 슬로건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이런 분위기는 그즈음 곡을 썼던 수많은 작곡가의 작품 안에 새겨져 있다. 작곡가 박준상은 그 원전을 ‘춘향전’으로 삼아 대편성 오케스트라와 사물놀이가 함께하는 오페라 <춘향전>을 내놓았으며, 작곡가 김희조는 1986년 아시안게임의 음악총감독을 맡으며 국악과 양악, 전통과 현대를 넘나드는 음악을 선보였다. 작곡가들은 가장 서구적인 장르를 쓰면서도 그 안에 한국적인 무언가를 꼭 담았다. ‘작곡하기’는 한국인이라는 ‘정체성’과 직결된 문제였다. 


  1947년생인 이건용은 이 시기를 대표하는 작곡가 중 한 사람이다. 그는 한국음악론과 민족음악론을 주장했으며 황성호·유병은·허영한·진규영과 함께 제3세대 작곡동인을 결성했다. 제3세대 작곡동인은 서구음악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데 열심이었던 선배 작곡가에서 한발 더 나아가 우리의 음악문화를 만들 것을 주장했다. ‘음악’이라는 명사가 암묵적으로 서구의 음악을 의미한다는 것에 대해 비판이 시작된 것도 이즈음이었다. 남북한 분단이라는 독특한 상황에 처해 있는 우리에게 ‘전통음악’이 무슨 의미인지 되묻기도 했다. 해금이나 대금, 국악 앙상블 등 전통적인 악기편성을 실험하고 이 악기들을 위해 작품을 내놓는 일도 많아졌다. 작곡가들은 전통과 현실을 아우르는 음악, 너무 난해하지 않은 음악 등을 통해 대중에게 다가가는 일에도 집중했다.



달라진 청각 환경과 새천년의 작곡가들


  시간은 급속도로 흘러 2000년이 훌쩍 지나고 완전히 새로운 세대가 작곡계에 등장했다. 소위 도시에서 나고 자란, 일상에서 전통음악을 들어 본 적이 없는 젊은 작곡가들이 곡을 쓰기 시작한 것이다. 사실상 서구의 음악어법을 배워 영미에서 유학하고 한국에 돌아온 이들에게 ‘전통’이란 따로 시간을 내서 배워야 할 미지의 음악에 가까웠다. 이들에게 민족이나 국가 정체성은 애매모호한 무언가였고, 자신의 청각적 기억 안에 ‘한국인’이라고 할만한 어떠한 흔적이 남아있는지 스스로 혼란스러워했다. 이제 작품 안에 새야화현이나 오음음계를 담는 행위는 그 자체로 ‘지난 세대의 작법’을 연상시켰기에, 자주 시도되지 않았다. 과거의 전통성 담론과 그 방편으로 제시된 특정 작곡기법이 세대성을 강하게 띄게 된 것이다.


  변화한 환경 아래에서, 2000년대 이후 활동한 작곡가들은 그들의 뿌리와 자신의 음악을 사뭇 다른 방식으로 연결시켰다. 눈에 띄는 변화 중 하나는 그들이 작품 안에 ‘토속적인 동요’를 삽입했다는 것이다. “엄마가 섬그늘에, 굴 따러 가면, 아기가 혼자 남아”로 시작하는 <섬집아기>는 이흥렬이 작곡한 창작동요지만 많은 이들이 이 음악을 구전으로, 어머니의 음성으로 처음 접했다. 그렇게 1986년생 작곡가 박정은은 독일 유학시절에 작곡한 <알터 에고>(2013)의 클라이맥스에 이 <섬집아기>를 독창으로 삽입했다. <섬집아기>가 울려 퍼지는 순간 공연장은 생경한 시간 감각에 휩싸였다. 전통음악이 우리의 이웃과 삶의 기억을 되살려냈던 것처럼 토속적인 음계로 작곡된 동요가 과거의 전통음악과 유사한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퍼포먼스와 음향 그 자체로서의 전통음악


  최근 발견되는 또 다른 전통음악의 활용법은 음악의 ‘퍼포먼스적’ 측면에 집중하는 것이다. 선대 작곡가들이 전통음악의 특정 선율이나 리듬 등 기법적인 요소만을 발췌해 활용했다면, 이제는 종합예술 형태로 존재했던 ‘전통 그 자체’를 새로운 음악 안에 구현한다. 대표적으로 작곡가 장동인의 <이곳을 통하여>(2021)는 전통음악의 연행방식을 작품 안에 녹여낸다. 두 명의 여성연주자가 등장하여 판소리 ‘심청가’를 모티브로 심청이의 한풀이를 도와주는 음악을 전개하는데, 해당 작품은 전자음향과 다양한 타악기를 활용한다. 무엇보다도 이 작품에는 연주자들의 움직임을 입력값으로 받아들이는 전자적 센서가 활용됐다. 연주자들이 부채나 팔을 흔들며 무대 위를 돌아다니면 거친 바람소리가 전자적으로 입력되고, 이 움직임이 결국 전자음향으로 전환되는 식이다. 이제 현대적인 콘서트홀에 앉은 관객은 이 독특한 작품을 통해 디지털 굿을 관람하는 것과 유사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전통음악을 활용하는 또 다른 방식은 ‘의식’이나 ‘관념’으로서가 아니라, 이를 지극히 ‘음향’으로 다루는 것이다. 이 경우 소리 자체에 대한 탐색을 진보적인 방식으로 행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자주 발견되는 사례로 전자음악 분야에서 국악기를 활용한 라이브 일렉트로닉스 음악이 있다. 이런 음악에서는 전통적인 시김새나 독특한 선율표현 방식을 고스란히 증폭시켜 ‘음향 그 자체’로 전개시킨다. 이 경우 전통음악이 주는 정체성의 정치나 해당 음악이 불러일으키는 기억 등은 뒤로 물러나고, 특정 악기를 소리내는 순간 1~0.001초의 짧은 시간 위에서 생성되는 독특한 질감이 주목받는다. 

 

 



나의 전통, 그들의 전통, 우리의 전통


  21세기가 시작된지도 25년이 지났다. 이미 도래한 미래의 한가운데, ‘뉴노말’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전통음악’이란 얼마나 멀고 또 얼마나 가까운가? ‘전통음악’은 우리 아버지·어머니 세대의 무엇이었을 뿐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주제일까? 먼 과거에 예고했던 대로 국경과 지리적 경계는 과거와는 다른 의미를 갖고 있으며, 디지털 네이티브(digital native) 세대는 그들의 뿌리를 유튜브와 웹에서 검색한다. 이제 집단적으로 사고하는 ‘대중’ 보다는 소수자의 목소리가 저마다의 소리를 내는 ‘개인’의 시대가 도래했다. 한 개인이 자신이 태어난 나라의 ‘전통음악’을 다른 이에게 소개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이것이 집단주의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여러 국적의 학생들이 섞인 강의실에서 그들 각자의 전통음악을 서로에게 들려주되, 그들 중 어느 누구도 해당 음악을 삶의 한 부분으로 여기지 않는 것은 너무도 익숙한 풍경이다.


  여전히 한국의 작곡가들에게 전통음악은 중요한 음악적 자원과 가치로 존재한다. 다만, 전통음악의 활용법은 작곡가마다 너무도 다양해졌다. 이제 어떤 음악 안에서는 아프리카의 전통음악과 미국의 인디언 음악 사이에 우리의 전통음악이 병렬로 배치된다. 김택수(*1980)의 <with/out>(2024)에서도 한국적인 기법은 서구의 낭만주의나 고전주의 음악처럼 음악적 ‘스타일’의 한 가지로 다뤄졌다. 이 경우 한국의 전통에 대한 작곡가의 시선은 흡사 외국인과 다르지 않다. 한국 고유의 전통음악적 특징들은 본질적인 것이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의 다양한 음악과 연결고리를 갖는 것으로 인지된다. 그렇게 1981년생인 작곡가 서주리의 <피아노리>(2017) 안에서도 ‘젓가락 행진곡’과 ‘아리랑’, 그리고 미국 작곡가의 유명 작품이 나란히 인용되었다. 



  나운영이 정성스레 눌러 담았던 전통적 음악 요소들에서부터, 이건용이 글로 또 말로 설득했던 정체성을 담은 음악들, 그리고 박정은과 장동인이 재기발랄하게 활용했던 굿과 동요들, 더 나아가 김택수나 서주리가 내놓은 작품에 이르기까지, 전통음악을 바라보고 이를 요리하는 방식은 계속 변화해 왔다. 재료를 요리하는 방식도 달라졌지만, ‘전통음악’이 과연 무엇인지에 대한 저마다의 생각도 변화해 왔다. 다들 전통음악의 ‘고정불변한 무언가’를 가져와 썼다고 생각했겠지만, 지나고 보니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다. 많은 작곡가들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전통음악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재정의했으며, 그 안에서 전통음악의 형태와 규모, 본질이 계속해서 변화했다. 세상도 변했고 작곡가들도 변했으며, 전통음악도 변했다. 그래서였을까? 왠지 멀게만 느껴지던 ‘전통음악’이 여전히 어딘가에서 항상 숨 쉬고 있었던 이유를 이제는 조금 알 수 있을 것 같다. [畵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