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글로벌메뉴



칼럼

[畵/音.zine vol.12] 畵音​ 30년 특집 인터뷰 III: 에르완, 최하람, 박현​ '우리가 함께 한 시간'
안정순 / 2024-12-01 / HIT : 143

​畵音 30년 특별 인터뷰 III: 에르완 리샤, 최하람, 박현​

 

우리가 함께 한 시간

안정순 (음악학박사, 음악평론가)

 

어느덧 2024년 11월 중순. 찬바람이 유리창 너머로 스치고, 햇살은 낮게 깔려 건물들 사이에 잔잔히 비치는 늦은 오후 시간이었다. 문득 서초동 사무실 창밖을 바라보니 은행나무는 여전히 노랗게 빛나고 있었고,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비올리스트 에르완과 최하람, 바이올리니스트 박현의 발걸음은 가을의 잔잔한 정취를 안고 있었다. 간단히 인사를 나눈 후, 올해의 이상기후, 코로나 이후 달라진 뒷풀이 문화, 서초동 상권의 변화 등 자연스레 일상의 대화들이 오고 갔다. 오늘의 간담회는 화음 창단 30주년을 맞아 기획된 특별 인터뷰 중 하나이자 연주자와 비평가가 마주하는 두 번째 자리다.

 

6ec93d654979bb9c292d105ee5246be7_1733489
비올리스트 에르완 리샤(Erwan Richard), 비올리스트 최하람, 바이올리니스트 박현

 

화음에 입단하게 된 계기, 동기, 배경이 궁금합니다.


에르완: 저는 2012년쯤부터 화음에서 연주를 시작했어요. 한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화음 단원 중 한 분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는데, 당시 김경선 선생님이 악장으로 활동 중이셨고, 전화를 주신 분은 아마도 김상진 선생님이 아닐까 추측해요. 제가 알기로는 그 시점이 배익환, 미치노리 분야, 조영창. 마티아스 부흐홀츠 등 리더 그룹 중심의 활동이 끝나가던 시기였던 것 같아요. 솔직히 누가 전화를 주셨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요.

 

박현: 2012년이라면 리더 그룹 중심 체제가 지금의 형태로 변화하던 시기였던 것 같아요. 아마도 에르완 선생님이 프랑스와 한국 모두에서 명성이 높고 활발한 활동 중이셨기에 화음의 눈에 띄셨을 겁니다. 저의 경우 화음과의 인연은 유학 시절 처음 시작됐어요. 석사를 졸업하고 박사에 들어가기 전 잠시 한국에 돌아와 있을 때, 김상진 선생님이 제가 한국에 있다는 사실을 아시고 연락을 주셨죠. 그 덕분에 객원 연주자로 초청되어 몇 차례 연주할 기회를 얻었어요. 당시에는 배익환, 조영창, 미치노리 분야 등 리더 그룹이 활동 중이셔서, 학생이자 연주자로서 정말 값진 경험을 했습니다. 중국 순회 연주에도 참여할 기회가 있었는데 이것은 제게 정말 큰 행운이었어요.이후 미국으로 돌아가 박사 과정을 마친 뒤, 2009년에 귀국해 정식으로 화음과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꾸준히 화음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최하람:저는 2016년에 화음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여기 계신 두 분 선생님에 비하면 활동 기간이 짧지요. 제가 화음 활동을 시작했을 때는 지휘자가 없던 시기의 끝자락이었고, 당시 리더그룹으로 이경선, 김상진, 이보연 선생님이 계셨습니다. 리허설 공간에는 피아노가 없었고, 리허설 때 연주자들이 바라보는 방향이 지금과는 달랐던 기억이 있네요. 

 

세 분은 대략 10년 전후로 화음 활동과 운영상의 변화를 경험했다는 공통점이 있네요. 활동하시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말씀해 주세요.

 

에르완: 2012년 여름에 있었던 유럽 순회 연주가 정말 잊을 수 없는 기억입니다. 3주간 코펜하겐, 제네바, 리스본, 더블린, 브뤼셀, 벨그라드 이렇게 6개 도시를 돌며 순회 공연을 했죠. 각 도시에서 약 3일씩 머무르며 연주도 하고 여행도 했는데, 아름다운 도시의 풍경과 화음의 연주가 어우러졌던 그 시간이 정말 최고의 순간으로 남아 있습니다.

 

박현: 아마 국제교류재단(Korea Foundation)의 후원으로 진행된 프로젝트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3일마다 이동해야 하는 일정은 꽤 피곤할 수도 있었지만, 저에게도 유럽 순회 연주는 정말 잊을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이었어요. 연주도 리허설도 모두 게 완벽했죠. 

 

활동하시면서 느낀 화음만의 독특한 문화나 특징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에르완: 국내외를 막론하고 연주 단체는 많지만, 화음은 특히 문화와 깊이 연결된 연주 단체라고 생각합니다. 보통 단체는 기존 작품을 연주하는 데 중점을 두는데, 화음은 창작 작품을 의뢰하고 이를 연주하죠. 이렇게 현장의 문화와 밀접하게 연결된 시스템은 세계적으로도 매우 드물 거예요. 현대음악 단체라고 해도 다른 예술과 이렇게 긴밀히 연결된 경우는 거의 없는 것 같아요.

 

박현: 저의 개인적인 경험에서 말씀드리자면, 30년 전 화음이 창단 연주를 했을 때 저는 바이올린을 배우던 고등학생이었어요. 교복을 입고 연주회장을 찾았던 기억이 나네요. 당시 화음의 연주는 제게 정말 큰 충격이었습니다. 지휘자 없이 연주자들만의 호흡으로 완성된 실내악의 정수를 보여준 무대였거든요. ‘한국에 이런 챔버 오케스트라가 있다니’ 하는 생각에 벅찬 감동을 느꼈던 기억이 납니다. 이후 학업을 이어가면서 자연스럽게 ‘나도 언젠가 저곳에서 연주하고 싶다’는 꿈을 품게 됐죠. 질문에 대한 답을 구체적으로 하자면, 제가 생각하는 화음의 가장 큰 특징은 연주자들이 함께 작품을 깊이 분석하고 해석하며 음악을 함께 만들어간다는 점이에요. 시간이 흘러 리더 그룹 중심의 체제가 바뀌고 지금까지도 변화를 거듭하고 있지만, 화음의 출발점이었던 협업의 문화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하람: 저는 화음의 특징이 지휘자가 있건 없건 표면적인 연주 방식 너머에 있는 시스템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화음은 작곡가, 연주자, 평론가가 함께 소통하며 단순한 음악을 넘어 우리 문화 전반과 긴밀히 연결된 예술을 만들어가죠. 박상연 감독님께서 인터뷰에서 자주 하시는 말씀처럼, ‘이것이 인생이다’라는 시각이 화음이 가진 음악적 태도의 근본에 깔려 있는 것 같아요. 이 사무실을 둘러보세요. 꽂혀 있는 책 제목만 봐도 화음이 단순히 연주 단체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홈페이지의 아카이브 기능도 뛰어나고, 화음에서 발간하는 웹진 역시 단체의 기록을 세심히 남기고 있죠. 마치 <조선왕조실록>이 그 자체로 역사적 보존 가치를 가지듯, 화음도 자신의 행위를 철저히 기록하며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지난 30년이 허투루 지나가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이런 기록들이 연주로 표현되고 문화로 순환하는 형태를 만든 것은 화음만의 독특한 문화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중요한 특징이네요. 평소에 꼭 여쭤보고 싶었던 질문이 있습니다. 저는 음악을 글로 표현하는 사람이다 보니, 연주자로서의 경험이 정말 궁금합니다. 지휘자가 없는 상태에서 함께 해석한다는 것이 항상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닐 텐데요. 연주자로서 경험하신 다양한 측면을 공유해 주실 수 있을까요?

 

박현: 저희처럼 10년 이상 활동한 연주자들에게는 익숙한 방식일지 몰라도, 화음에 처음 참여하는 젊은 후배 연주자들에게는 적응이 쉽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리허설 때 ‘이렇게 합시다’라는 식의 강하고 직접적인 지시가 내려오지 않기 때문이에요. 특히, 연주자들의 조합이 매번 달라질 때는 의견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혼란이 생길 수도 있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주자 한 분 한 분이 변화에 열려 있고, 어떻게 생각을 모아갈지, 어떻게 소리를 만들어갈지를 고민하는 과정 자체에 집중하면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것 같습니다. 화음은 연습의 ‘효율성’보다는 ‘과정’에 더 큰 가치를 두는 단체라고 볼 수 있어요. 그래서 때로는 리허설이 완만히 해결되지 않은 채 급하게 끝나는 경우도 있지만, 며칠 후 다시 만나 연습할 때 자연스럽게 해결되기도 해요. 시간을 두고 숙성된다고 표현할 수 있을까요? (웃음) 연주 결과는 종종 시간을 필요로 하고, 때로는 무대에서 비로소 완성되기도 한다고 생각합니다.

 

에르완: 저는 조금 다른 측면도 말씀드리고 싶어요. 지휘자가 없는 챔버 오케스트라에서는 음악적 해석이나 빠르기를 정할 때 명확히 결정을 내리기가 어렵습니다. 그런 경우, 애매한 중간 지점으로 타협하게 되기 쉽죠. 그런데 이렇게 되면 그냥 괜찮은 수준, 그러니까 음악적으로는 이도 저도 아닌 결과가 나올 위험이 있거든요. 

 

현재까지 화음은 화음 프로젝트를 통해 239개의 창작곡 데이터베이스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연주자로서 특히 기억에 남는 작품 한두 개를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에르완: 저는 배동진 선생님의 <사운드 플레이-호모파베르>(HPOp. 170)와 김성기 선생님의 <Monologue for Viola Solo>(HPOp. 77)을 꼽고 싶습니다. 

 

최하람: 저는 오래전 경주 우양미술관에서 연주했던 김규동 선생님의 <Contuor>(HPOp. 173)와 안성민 선생님의 <The Starry Night II>(HPOp. 166)가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아마도 안성민 선생님의 곡은 2016년 대전시립미술관에서의 연주가 아마 초연인 것 같은데 그 연주에는 제가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같은 곡을 2017년 10월 28일 경주우양미술관에서 연주했던 것 같습니다. 김규동 선생님의 작품은 허수영 작가님의 그림의 선적인 요소를 소리를 통해 다양한 청각적인 질감으로 묘사한 것이 인상 깊었고, 안성민 선생님의 작품은 반짝이는 별을 보고 있는 장면의 그림이 주는 정적이면서 동적인 느낌을 그대로 소리로 표현한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특히 경주 보문단지 내에 있는 우양미술관은 정말 아름다운 공간이었고, 갤러리라는 공간에서 연주된 음악이 주는 특별한 분위기와 조화로움이 강렬히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제가 화음 활동을 막 시작했던 때에 연주했던 곡이라 보다 의미 있고 기억에 오래 남는 면도 있는 것 같습니다.

 

박현: 제 부모님의 작품이 화음 프로젝트에 모두 기록되어 있어서 매우 뜻깊게 생각합니다. 하나는 어머니이자 작곡가인 김혜자 선생님의 <빈 들녘에서의 노래>(HPOp. 28), 다른 하나는 아버지이자 작곡가인 박동욱 선생님의 <Dissolution>(HPOp. 60)입니다. <Dissolution>은 초연 이후로 여러 번 재연되었지만 늘 속으로 한 번 더 듣고 싶다는 바람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올해 아흔아홉 번째 생신 기념음악회에서 이 작품이 다시 연주되었는데, 초연 당시보다 깊이 있는 해석이 더해져 새롭게 재탄생된 것을 보며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작품이 재연된다는 건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초연은 작품이 아직 설익은 상태일 수 있지만, 시간이 흐른 후 새로운 연주자들의 시선과 해석이 가미되어 완전히 다른 차원의 감동을 선사할 수 있더라고요. 마지막으로 꼭 언급하고 싶은 작품은 유럽 순회 연주에서 주제곡처럼 연주했던 브라이언 수츠 선생님의 <Six Cities>(HPOp. 109)입니다. 유럽 순회 당시 6개의 도시를 주제로 만들어진 이 작품은 순회 연주의 테마와 완벽히 어우러져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6ec93d654979bb9c292d105ee5246be7_1733489
쇼스타코비치 <챔버 심포니 13번>을 연주하는 에르완 리샤와 화음챔버오케스트라

 

그렇다면, 지금까지 연주했던 고전 레퍼토리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에르완: 저는 쇼스타코비치 챔버 오케스트라 시리즈를 꼽고 싶습니다. 특히 제가 <현악사중주 제13번, op. 138>을 편곡하기도 했답니다.

 

박현: 저도 쇼스타코비치 챔버 오케스트라 시리즈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쇼스타코비치의 현악사중주는 현악 오케스트라로 편곡하기에 아주 적합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작곡 스타일을 보면, 이미 현악 오케스트라 같은 풍부한 소리를 염두에 두고 쓴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하죠. 그래서 현악 오케스트라 버전으로 편곡했을 때도 원작의 의도를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그 웅장함과 강렬한 에너지를 극대화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특히 사중주에서 느껴지는 밀도와 집중감이 현악 오케스트라로 확장되면서 새로운 차원의 에너지를 만들어냈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이러한 시도가 화음의 정체성과도 잘 맞아떨어지고, 그야말로 ‘화음다운 연주’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연주자로서 전통적인 연주회장이 아닌 갤러리나 박물관과 같은 공간에서의 연주를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에르완: 저는 이런 공간에서의 연주를 여러 관객층에게 다가갈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제 가족이나 지인 중 예술에 관심은 많지만 클래식 콘서트장을 찾는 경우는 드뭅니다. 미술관이나 전시장은 상대적으로 문턱이 낮아서 쉽게 방문하지만, 클래식 콘서트장은 여전히 높은 진입장벽이 있는 것 같아요. 이런 점은 유럽도 마찬가지입니다. 클래식 음악회가 보수적이고 격식 있는 이미지로 다가가다 보니 대중 접근성이 떨어질 때가 있죠. 그에 비해 갤러리 같은 공간은 클래식에 대한 선입견 없이 예술에 관심 있는 사람들, 그리고 미래의 청중이 될 수 있는 이들에게 클래식을 소개하기에 좋은 장소라고 생각합니다. 제게 중요한 것은 청중의 수보다는 그들이 얼마나 연주에 공감하고 감동을 받는가입니다. 갤러리나 박물관은 이러한 소통을 가능하게 해 주는 특별한 무대라고 봅니다.

 

박현: 저는 집중하는 관객들만 있으면 장소는 크게 상관이 없다고 생각해요. 갤러리와 음악은 서로 잘 어울리는 조합이기 때문에 미술관에서의 연주는 저도 아주 자연스럽다고 느껴요. 하지만 연주자로서 음향적인 제약이 있을 때는 조금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음악은 울림을 세심하게 다듬는 작업인데, 공간에 따라 이를 조절하기가 쉽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야외 공연에서는 울림을 제어하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죠. 보기에만 이상적인 공간이 실제로 연주하기 적합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연주 공간의 조건이 소리를 제대로 전달할 수 있는지 기획 단계에서 충분히 검토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최하람: 사실 연주회장이 아닌 공간에서는 현실적으로 불편한 점들이 많습니다. 익숙하지 않은 장소에서는 음향 문제뿐만 아니라 대기실이 없거나, 의상을 갈아입거나 화장할 장소가 부족한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사소한 요소들이 연주자의 컨디션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죠. 그럼에도 새로운 공간이 주는 에너지와 독특한 경험은 연주자에게도 청중에게도 특별한 감동을 줄 수 있습니다. 음악은 단순히 들리는 소리 이상으로 공간에서 입체적으로 경험되는 예술이기 때문에, 이런 점에서 갤러리나 박물관은 매력적인 무대가 될 수 있습니다. 물론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지만, 지나고 보면 그러한 어려움은 잊히고 공간이 주는 특별한 힘만이 남는 것 같아요.

 

이번에는 선생님들의 개별 활동에 대해 여쭤보고 싶습니다. 박현 선생님의 연주 에세이를 잘 읽고 있습니다. 연주자의 입장에서 쓴 분석 글이라 매우 흥미로웠는데요. 글로 음악을 표현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박현: 저도 사실 이런 종류의 분석 글을 정식으로 게재한 것은 처음이었던 것 같아요. 특별한 계기가 있었다기보다는 문헌 수업을 오랜 기간 강의하면서 작품 설명과 분석을 해왔던 것이 자연스레 연결된 것 같습니다. 웹진 편집장님께서 화음에서 연주되는 작품에 대해 연주자로서의 시각으로 분석 에세이를 써달라는 요청을 주셨고, 이를 계기로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론적 분석을 넘어 연주자로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작품을 이해하고 이를 전달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글로 정리하는 과정이 연주에도 큰 도움이 되더라고요. 물론 수필처럼 편안하게 읽히는 글도 좋지만, 저는 감상 이상의, 연주자로서의 심층적인 음악 분석에 초점을 두고자 했습니다. 다만, 사실 제가 글로 정리했을 뿐, 이런 내용은 연주자들이 리허설에서 자주 나누는 이야기들입니다. 연주자마다 구체적으로 추구하는 바는 조금씩 다를 수 있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작곡가의 의도를 파악하고, 그 의도에 가장 가까워지는 해석을 찾아내는 것입니다. 이는 결국 악보를 분석하고 해석하는 과정이죠. 우리가 연주 리허설에서 이러한 해석을 찾아가는 과정을 밟는다면, 제 글도 그 연장선에서 이해되길 바랍니다.

 

에르완 선생님의 포토 에세이를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진, 글, 음악을 통해 한국에서의 일상을 기록하고 계신데, 그 안에 담긴 선생님의 한국을 바라보는 시선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에르완: 저는 2007년에 한국에 왔습니다. 처음 제가 살았던 동네는 그렇게 예쁜 곳은 아니었어요. 처음엔 낯선 환경에서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고, 숙면도 잘 취하지 못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서 밖으로 나가 동네를 많이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기 시작했어요. 사진을 찍으며 숨어 있는 아름다운 모습을 찾아내고, 그 장면들에 제 마음을 담아보려 노력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한국이 점점 더 친숙해졌고, 지금은 마치 제 고향처럼 느껴질 정도로 애정이 생겼습니다. 특히 화음처럼 음악 이야기를 나누고 공감할 수 있는 친구들이 있어서 정말 행복합니다. 사실 포토 에세이를 위해 작곡을 하는 과정이 항상 쉽지는 않습니다. 사진과 연결된 비올라 연습곡을 작곡하고, 이를 녹음해서 유튜브에 올리는 작업은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일이에요. 하지만 음악과 사진, 글을 통해 저만의 시각으로 한국의 일상을 표현하고 기록할 수 있다는 점은 분명 의미가 있죠. 

 

마지막 질문입니다. 화음에서의 자신의 역할, 그리고 화음의 가치에 대해 나누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에르완: 요즘 우리는 참 흥미로운 시대를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하고 있죠. 제가 찍는 사진조차도 AI가 쉽게 따라 하고, AI 작곡과 연주도 현실로 다가오고 있어요. 앞으로 어떤 음악이 등장할지 예측하기 어려운 시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라이브 음악의 중요성을 더욱 절실히 느낍니다. 화음의 활동은 어쩌면 시대를 거스르는 도전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런 역할을 하지 않으면 현장 음악은 점차 사라질 것입니다. 실제로 관객과 함께 호흡하며 살아있는 음악을 연주하는 것 자체가 점점 더 소중해지는 시대가 되었잖아요. 이러한 가치를 지키는 데 우리는 공동의 책임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최하람: 사실 제 역할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적어도 여기 계신 두 분 선생님의 역할은 분명히 느낍니다. 리허설 때 에르완 선생님은 음악적 아이디어를 적극적으로 제안하시고, 그 아이디어로 멤버들을 설득하며 공감을 이끌어내십니다. 박현 선생님은 평소에는 조용하시다가도, 복잡한 상황에서는 한 번에 깔끔하게 정리해 주시는 역할을 맡고 계십니다. 그런 부분에서 늘 감사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박현: 최하람 선생님께서 워낙 겸손하게 말씀하셨지만, 사실 화음챔버에서 최하람 선생님은 정말 중요한 존재입니다. 돌이켜 보면, 앙상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함께 보낸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멤버들과 쌓아온 시간과 경험은 다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가치입니다. 앙상블을 앙상블답게 만드는 것은 결국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이 아닐까요? 화음이 30년 이상 지속될 수 있었던 이유도 바로 이 점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이제 연주자로서 나이를 먹어가면서, 사람들과 함께 연주하고 호흡하는 순간들이 그저 기적처럼 느껴집니다. 이런 순간들이 실력을 떠나 오랜 시간 묵묵히 함께해 준 동료들이 있기에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어 든든하고 감사한 마음입니다. 마지막으로, 음악감독인 박상연 선생님에 대해 꼭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박상연 선생님과 저희 연주자들의 관계는 단순히 지휘자와 연주자 사이로만 설명되지 않습니다. 선생님께서 변함없는 신념으로 묵묵히 이 단체를 짊어지고 가시는 모습을 보면 저희 모두 큰 존경심을 느끼고 있습니다. 

 

---

오후의 해는 점점 기울어, 어느새 창밖에는 어둠이 내려앉았다. 계절은 지나가지만, 음악과 이야기는 그 안에 머물며 또 다른 시간을 만들어 간다. 화음챔버는 작곡, 연주, 비평이라는 톱니바퀴 같은 시스템 안에서 ‘현장음악’이라는 모토를 중심으로 오늘, 그리고 이 순간의 공연문화를 빚어왔다. 살아있는 작곡가, 연주자, 비평가들이 음악이라는 공통의 언어로 소통하며, 우리의 문화를 함께 만들어가는 이 여정은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이다. 오늘 이곳에서 함께했던 연주자들이 10년, 20년 후 머리가 희끗희끗해지고, 세월의 흔적을 품은 모습으로 서로 마주할 때, 그들 사이에 쌓여 있을 또 다른 시간과 문화의 두께를 상상해 본다. 우리는 그저 음악을 만드는 사람들이 아니라, 함께 시간을 빚어가는 이들임을 깨닫는다. [畵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