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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畵/音.zine vol.11] 畵音​ 30년 특집 인터뷰 II: 배상은, 이보연, 최윤제 수석단원 '畵音, 삶과 예술의 연결…
안정순 / 2024-09-01 / HIT : 308

畵音 30년 특별 인터뷰 II: 배상은, 이보연, 최윤제 수석단원

 

畵音, 삶과 예술의 연결

안정순 (음악학박사, 음악평론가)

 

 

  2024년 8월의 첫째 주 금요일 오후 5시, 서초동 사무실의 작은 홀에서 조촐한 간담회가 열렸다. 화음과 함께 한 지난 30년의 시간을 돌아보며 그동안의 추억을 되새기고 앞으로의 방향을 모색하는 뜻깊은 시간이었다. 이 자리에는 화음챔버오케스트라와 오랜 시간을 함께한 수석단원 바이올리니스트 배상은, 이보연, 최윤제, 그리고 평론가이자 화음과 오랫동안 협업해오신 송주호와 필자가 함께하였다.

 

 

화음과의 만남

 

안정순: 지난 30년간의 화음의 활동을 정리하면서 90년대의 사진 자료들을 보았습니다. 거기에는 풋풋한 청년의 모습을 한 박 감독님과 여기 계신 선생님들의 생기발랄한 이십 대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화음 연주회 후 따로 만날 기회가 없어 항상 아쉬웠는데, 오늘 이렇게 의미 있는 자리를 마련하게 되어 정말 기쁩니다.

송주호: 실내악단 화음의 초창기 모습이 기록된 사진과 글을 보며, 이렇게 인터뷰 형식으로 잘 기록해서 남겨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30년이라는 시간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니까요!

안정순: 먼저 화음에 입단하게 된 계기와 시기가 궁금합니다.

배상은: 1996년 3월부터 화음에 참여했습니다. 원래 박상연 감독님이 1993년 실내악단 화음을 갤러리에서 시작하셨죠. 제 귀국 독주회에 박상연 감독님이 찾아오셔서, 자신이 구상하는 단체에 관해 설명하시면서 함께 해보지 않겠냐고 권유하셨습니다. 

이보연: 저는 유시연 선생님과 이경선 선생님의 추천으로 1998년에 화음 활동을 시작했어요. 제 연주 전에 박 감독님을 압구정 근처에서 먼저 만났을 때, 감독님이 열변을 토하며 단체를 시작하는 취지를 설명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그 후 제 귀국 독주회 때도 오셨죠.

최윤제: 저는 1999년에 시작했어요. 당시 박 감독님이 외인구단처럼 직접 발로 뛰며 연주자를 찾으셨죠. 물론 제 독주회 때도 오셨습니다. 

안정순: 화음의 연주를 경험한 청중들은 다들 가족 같아서 좋다고 얘기합니다. 오랜 시간을 함께해서 그런 걸까요?

배상은: 대부분의 연주단체들이 다 가족 같다는 얘기를 듣지만, 화음은 정말 다른 것 같아요. 뭐가 다른지 생각해 보면, 화음은 가족이 만드는 피상적인 분위기를 만드는 게 아니라 가족처럼 정말 솔직하게 서로를 대하는 것 같아요. 직접적으로 어려운 얘기를 나누기 때문에 가족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어쩌면 가족보다 더 힘든 시간을 나누고, 밥도 자주 같이 먹고 하다 보니 진짜 가족처럼 깊이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는 거죠.

최윤제: 맞아요. 자주 만나서 연주회를 하다 보니 심리적으로도 가까워졌습니다. 서호미술관에서 진행되었던 실내악단 화음의 ‘자화상 프로젝트’ 시절이 기억에 많이 남아 있어요. 미술관까지 가려면 차가 막혔지만 정말 열심히 다녔던 기억이 납니다. 챔버오케스트라와 실내악 등으로 잦은 연주회를 하다 보면 연주자들을 자주 만나게 되고, 자연스럽게 마음으로도 가까워졌던 것 같아요.

이보연: 또 당시에는 기업 지원 덕분에 연습 중에도 간식을 풍족하게 먹으며 여유롭게 연습할 수 있었어요. 제가 보기에 화음이 가족 같은 이유는 연주회에 오시는 청중 때문이 아닌가 해요. 화음은 독특한 청중 층을 갖고 있어요. 화음의 연주회를 찾는 청중들은 마치 오타쿠처럼 열정적인 분들이 많아요. 일반 음악회에 오시는 분들과는 사뭇 다르죠. 이들 덕분에 무대에서도 따뜻함이 느껴진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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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리니스트 배상은

 

 

고유한 문화

 

안정순: 화음 창단 초기에는 지휘자가 없었다고 들었습니다. 상하관계가 없는 독특한 구조나 화음만의 독특한 문화에 관해 얘기해 보고 싶습니다. 

배상은: 맞아요. 창단 초기에는 지휘자가 없었습니다. 리더 그룹인 배익환, 조영창, 라이너 모그(Rainer Moog), 마티아스 북홀츠(Matthias Buchholz), 미치노리 분야(文屋充徳 Michinori Bunya) 선생님이 중심이 되어 이끌어갔습니다. 이분들이 계셨기 때문에 지휘자 없이도 연주할 수 있었어요. 워낙 실력이 탁월했기 때문에 저희는 리더 선생님을 거의 부모님처럼 따랐습니다. 지금은 박상연 감독님의 지휘 아래 연주하지만, 연주자들이 함께 지탱하며 연주를 만들어 갑니다. 화음 안에는 서로에 대한 깊은 신뢰가 있는 것 같아요. 서로 믿고 연주하는 거죠. 이것은 예나 지금이나 동일해요. 이런 신뢰가 없었다면 감독님도 아주 힘드셨을 거예요.

최윤제: 상하관계가 없는 분위기는 화음의 중요한 유산이라고 생각해요. 당시 리더 그룹은 해외 활동을 하면서도 화음의 리허설을 위해 한국으로 직접 오셨어요. 십여 년 동안 거의 열흘간을 오로지 연습을 위해 한국으로 오시는 리더 선생님들이 있었고, 심지어 그분들이 미리 오셔서 연습하고 있으니, 상대적으로 어렸던 저희 같은 연주자들은 자연스레 더 열심히 연습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다른 스케줄이 있다고 해도 화음의 연습이 우선이 되었어요. 연습 후에는 저녁도 같이 먹으며 시간을 보냈고, 다음 날 또 연습하고, 거의 합숙이었습니다. 그때는 정말 모든 게 화음 활동 중심으로 살았습니다. 저의 개인 삶과 화음이 구분되지 않았죠. 되돌아보면 정말 감사한 시간입니다. 

안정순: 그런데 혹시 상하가 없다는 것이 때로는 불편함을 주지는 않았나요?

최윤제: 저의 경우 불편한 점은 없었어요. 일단 사중주단이 커진 개념의 화음챔버였고, 모두 선후배 관계였죠. 비록 저는 막내였지만 세컨드 수석을 맡았어요. 그때는 좌충우돌하면서 이끌어갔던 것 같은데 불편하지는 않았습니다. 연주자들 사이에서는 10년을 봐도 사람은 모르지만, 연주를 해보면 사람을 알 수 있다는 말이 있어요. 마치 사람과 걸어보면 그 사람의 특징을 알듯이 연주할 때도 펄스(pulse)가 있는 것 같아요. 그 당시 펄스가 비슷하고 잘 맞았던 것 같아요.

이보연: 이해관계가 없는 단체를 만드는 게 박상연 감독님의 큰 그림 중 하나였다고 알고 있어요. 우리나라 사회는 특히 상하관계가 중요한데 이해관계가 없고 상하관계가 없는 문화는 현실적으로 구현하기 힘들지만, 화음은 그렇지 않아서 좋았던 것 같아요. 지금은 지휘자가 있는 상태이지만 화음의 지휘는 전통적 지휘자의 개념과는 달라요. 오히려 연주자들이 음악의 해석에 많이 관여하고 상의합니다. 감독님은 이러한 상황을 지휘자에게 반격한다고 절대 생각하지 않아요. 지휘자와 연주자는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입니다. 혹자는 지휘봉을 잡으면 없던 아집도 생긴다고 해요. 그런 박 감독님은 그렇지 않은, 절대 그럴 수 없는, 결코 위계적이지 않은 사람 같아요.

배상은: 위계라든지 상하관계는 아니지만, 화음은 리더를 중심으로 음악적 연륜에 대한 존경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완전히 위계가 없었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외부에서 보면 박상연 감독님 중심으로 흘러간다고 보일 수 있지만, 저희가 의견을 내고 감독님을 중심으로 하나의 소리를 내려고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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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리니스트 이보연

 

 

잊을 수 없는 순간들

 

안정순: 그러면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볼까요? 

배상은: 1999년 펜데레츠키 페스티벌에 참가를 겸해서 독일에 가서 음원 녹음을 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때 이보연 선생님이 아주 아팠는데 미치노리 분야 선생님의 더블베이스 케이스에 들어가서 주무셨던 모습이 아직도 잊히지 않아요.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납니다.

최윤제: 저는 2001년 일본 문화청 예술제 초청 연주회가 기억에 남아요. 연주 후 배익환 선생님과 맛있는 음식을 먹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음악가들은 연습과 공연 외에 먹는 게 유일한 즐거움인 경우가 많거든요. 그 시기는 제가 결혼을 했을 때인데요. 결혼하자마자 맞은 첫 명절에 제사상을 차리지도 않고 연주를 위해 해외를 나갔으니, 시집에서 난리가 났었죠. 그리고 연도는 정확하지 않지만 부산 연주도 기억에 남아요. 연주 전날 제가 교통사고가 났고, 배상은 선생님은 다리를 다쳐서 깁스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도 연주를 위해 깁스를 풀고, 다리가 부은 채로 무대에 섰던 기억은 잊지 못할 것 같아요. 몸은 힘들었지만, 마음은 너무 즐거웠던 기억입니다.

이보연: 어쩌면 화음의 지난날 중 가장 어려웠던 시기일 수 있는데요. 리더 그룹 체제에서 박 감독님이 지휘하는 지금의 체제가 되는 그사이 시기가 화음챔버에게는 힘들었지만 제 개인적으로 가장 의미 있는 시간이었어요. 그때 박 감독님이 지휘를 직접 하시지는 않았지만, 자신이 생각하는 음악적 이상을 제시하셨죠. 그 기간의 음악이 상당히 수준이 있었던 것 같고 제게는 가장 기억에 남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꼭 언급하고 싶은 기억에 남는 분이 있습니다. 바로 황혜진 사무국장님입니다. 그 시절 연주자들을 정말 살뜰히 잘 챙겨 주셨던 분이라 정말 고마운 분이에요.

배상은: 2012년 여름 유럽 연주 여행도 잊을 수 없습니다. 그때 제 아이들이 어렸고 3주간의 연주 여행이라 잠시 망설였지만, 이 기회를 놓치면 안 될 것 같아 결국 떠났어요. 제가 강력하게 최윤제 선생님을 설득했죠. 정말 잘한 결정이었어요. 각 대사관에서 직접 초청했기 때문에 연주자에 대한 처우가 무척 좋기도 했어요.

안정순: 실내악단 화음은 갤러리에서 연주를 시작했는데 당시에 이런 경험은 어떠했나요?

배상은: 저는 사실 어디든 집중하면서 연주합니다. 갤러리라는 공간은 그림과 대화하는 느낌이 들어요. 서호미술관에서 류정애 작가의 풍경화를 걸어 놓은 채 작곡가 김혜자 선생님의 음악 <빈 들녘의 노래>를 연주했는데, 저에게는 음악을 이해하는 데 더 도움이 되었던 것 같아요. 그림이란 게 볼 때마다 다른 느낌을 주더라고요. 그림을 보면서 연주할 때마다 다른 느낌을 받는 게 너무 좋아요. 특히 미술가들의 색감과 저희가 만드는 음색과 깊은 관계가 있는 것 같고요. 

최윤제: 박수근미술관, 한가람미술관 다 공간이 너무 예쁘고 재미있었던 것 같아요. 한가람미술관에서 클림트의 <키스>를 걸어놓고 연주했던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안정순: 화음프로젝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배상은: 정말 오래전이지만 조금 전 말씀 드린 김혜자 선생님의 <빈 들녘의 노래>를 연주했던 기억은 잊히지 않습니다.

이보연: 임지선 선생님의 <그림자의 그림자>(Shadow of Shadow)가 너무 좋았습니다. 개인적으로 화음만의 색채가 덧입혀진 곡들이 좋은 것 같습니다. 감독님은 창작곡을 무대에 올리실 때마다 다르게 연주하는 것 같아요. 항상 올릴 때마다 신선하게 재해석하는 부분은 너무 좋습니다. 창작곡은 아니지만, 스트라빈스키의 <뮤즈를 이끄는 아폴로>(Apollon musagète) 연주가 기억에 남습니다. 이 작품은 다른 단체와 함께 한 연주도 있었지만, 항상 마음 한편에 아쉬움이 남았거든요. 화음에서 한 연주가 가장 마음에 남아요.

최윤제: 저도 창작곡은 아니지만 베르디의 <실내교향곡>(<현악사중주 E단조>의 편곡)가 아주 좋았어요. 고전 레퍼토리의 경우 감독님은 그리는 소리와 실제 연주자들이 내는 소리에서 간극을 느끼시는 것 같아요. 아무리 잘해도 그 지역, 예컨대 독일 사람의 소리가 다르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창작곡은 한 번 할 때 다르고, 두 번 할 때 다를 수 있어요. 그게 레퍼토리가 되는 과정이기도 하지만, 재연할 때는 신중하게 선택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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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리니스트 최윤제

 

 

화음과 나

 

안정순: 화음의 연주 활동이 선생님의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어느 정도인가요? 

최윤제: 유학을 다녀온 후 결혼하고 화음 활동을 하다 보니 가정과 레슨, 강의 등으로 일상이 꽉 찼어요. 정말 시간이 없었죠. 결국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데 이상하게 화음을 계속 선택하게 되더라고요. 그만큼 화음의 활동이 중요했던 것 같습니다.

배상은: 과거에는 화음의 연주가 제 생활의 대부분을 차지했죠. 가정과 자녀 양육으로 정신없던 시절, 화음 연습까지 더해져 정말 에너지가 바닥났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나 그 힘든 시간이 저에게는 삶의 원동력이 되었어요. 특히 과거 리더 선생님들과 소통했던 경험은 값진 순간이죠. 때로는 개인별로 부분적으로 시킬 때는 전문 연주자의 입장에서 당황스러울 때도 있었지만, 한 사람의 음악가로서, 하나의 인간으로서 성장하는 계기로 받아들였어요. 요즘은 화음뿐 아니라 다른 단체의 활동도 하기 때문에 예전과 일대일 비교는 힘들어요. 후배들이 저희 때와는 확연히 다르죠. 그럼에도 세대에 따라 달라지는 부분을 받아들이고 함께 융화되면 좋겠다는 바람입니다. 

송주호: 그런 점에서 화음의 현재, 그리고 단체에서 선배로서의 역할에 관해서도 얘기해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보연: 화음에서 제 역할이라면 고전 레퍼토리를 연주할 때 더 잘 표현할 수 있도록, 감독님과 연주자들 사이에서 조율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 있습니다. 웃음 코드를 담당하던 첼리스트 이헬렌씨가 미국으로 간 후 제가 대신 웃음을 주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답니다. 감독님이 워낙 진지한 분이기 때문에 연습 때 유머로 분위기를 유화시키는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최윤제: 예전이나 지금이나 인간이 표현하고자 하는 가장 오래된 감정(ancient feeling)을 음악으로 다시 표현하여 연주하려면 그만큼 본질에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음악이 스스로 말할 수 있도록 말이죠. 본질에 집중해서 연습한다면 효율은 따라올거라 생각하며 제 역할을 그 부분에 두고 있습니다.

배상은: 저는 과거의 경험이 너무 좋았습니다. 그러나 제가 좋아했던 연주 문화가 꼭 지금의 세대가 좋아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어쩌면 저희의 좋았던 경험을 전달하는 것이 저의 역할이고, 지금 세대의 젊은 연주자들이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살펴봐야 하는 것도 저의 역할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다시 말해 어떤 부분을 공유할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연습에 대한 태도와 문화를 만드는 데 제 역할을 두고 있습니다. 연습이 집중력 있게 이뤄질 수 있도록 하는 것, 그러니까 비록 개인주의가 팽배한 사회에서도 연주 단체를 운영하는 부분에 제 과업이 있는 것 같습니다.

 

 

화음과 함께하는 미래

 

안정순: 화음챔버에 기대하거나 건의하고 싶은 사항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최윤제: 연주자들이 레퍼토리 선정부터 참여하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레퍼토리가 반복되고 있어 연주자로서 기획부터 참여해 소통할 기회가 있었으면 해요. 그리고 창작곡을 재연하는 것은 의미가 있지만, 고전 레퍼토리는 변화를 주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예컨대 번스타인 <세레나데>도 화음 정도면 연주할 만하거든요.

이보연: 저는 과거 선생님들이 자주 하지 않는 곡은 다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요. 하기도 힘들고 듣기도 힘든 경우가 많거든요.

배상은: 청중에게 친숙한 곡 사이에 조금 도전적인 곡을 넣으면 연주자에게도 도전이 될 것 같아요. 해외에서는 자주 연주되지만, 국내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곡들을 소개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송주호: 최근의 프로그램은 창작곡을 우리의 레퍼토리를 만들고, 또한 새로운 멤버들의 화음에서의 경험을 선배들과 빠르게 조화시키려는 의도가 있습니다. 창작곡의 위촉과 재연은 화음의 전통으로서 계속될 것이구요, 이와 함께 선생님들의 말씀대로 앞으로는 잘 알려진 작곡가 중심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들로 고전 레퍼토리에 변화를 주고자 합니다.

안정순: 감독님께 바라는 점이나 요청하고 싶은 내용이 있으신가요?

이보연: 감독님이 자신의 목소리를 좀 더 강하게 내셨으면 좋겠어요. 여러 작곡가에게 동등한 기회를 주려는 의도는 좋지만, 자신의 취향을 더 드러내셔도 될 것 같아요.

배상은: 박상연 선생님은 저희를 이끌어 주신 분이자 화음의 얼굴입니다. 감독님과 저희는 가장 불편하면서도 편하게 얘기할 수 있는 관계죠. 그렇지만 선생님께 말씀드릴 때 주저한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아마 서로에게 전우애나 인간애가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얼마 전 감독님의 인터뷰에서 ‘예술이 일상이 되어야 한다’라는 말씀이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가정을 우선순위에 두고 살다 보니 ‘내 일(연주)을 너무 소홀히 하며 살았나’라는 우려가 있었어요. 많은 것을 놓친 것 같았지만 그렇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두 아이의 엄마로서 음악을 한다는 건 우리나라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에요. 그런 의미에서 여기 계신 선생님들 모두 대단한 거죠.

최윤제: 결국 예술이 일상이 될 수 있는 사람들끼리 만나고 그런 사람들이 결국 남게 되는 것 같아요.

안정순: 오늘 대화를 통해 선생님들의 깊은 생각을 나눌 수 있어 뜻깊었습니다. 일상이 예술이 되고, 예술이 일상이 되는, 이 둘을 구분하기 힘들기에 둘 다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자주 이런 자리를 마련해 대화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畵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