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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2014년 7월호 한전사우회보
신경숙 / 2014-06-21 / HIT : 1378

우리는 음악을 듣고 춤을 본다. 눈을 감고 음악을 들으면서 각 악기의 음색을 분별해내기도 하고, 객석 맨 앞줄에 앉아 무용수의 동작에 집중하면서 그 발끝의 떨림과 팔의 표정까지 읽어내기도 한다. 그러나, “음악을 보고 춤을 들으라”고 주문한 예술가가 있다. 뉴욕시티발레단의 전설적인 안무가, 조지 발란신(George Balanchine, 1904-1983)이다. 뛰어난 음악성을 갖고 있던 발란신은, ‘춤이야 말로 음악이 가시화된 것’(Dance is music made visible)이라고 생각했고 발레모음곡 “불새”(1910) “봄의 제전”(1913)을 작곡한 이고르 스트라빈스키(Igor Stravinsky, 1882-1971)와 평생 친구로 지냈다.

 

[발란신은 제정 러시아에서 작곡가의 아들로 태어나 음악과 발레를 공부했고 16세때 이미 안톤 루빈스타인의 곡, 「밤」(La Nuit)을 파드되(pas de duex)로 만들어내기도 했다. 그는 1924년 무용수였던 아내를 비롯한 무용단원들과 함께 독일공연여행 중 파리로 망명했고, 그곳에서, 진보적인 예술감독 세르게이 디아길레프(Sergei Diaghilev)의 눈에 띄어 발레 뤼스(Ballet Russes)의 안무가로 초빙된다. 시대를 앞선 천재들은 서로를 알아보는가! 디아길레프는 스트라빈스키에게 발레 모음곡을 의뢰하여 “불새,” “봄의 제전”을 탄생시킨 장본인이었다. 스트라빈스키외에도 라벨, 드뷔시, 프로코피에프, 사티,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레스피기, 풀랭같은 작곡가들이 그에게 곡을 의뢰받았고, 피카소도 디아길레프가 이끄는 발레 뤼스의 무대장치를 맡은 적이 있으니, 디아길레프에 의해서 시각 예술과 청각 예술이 하나의 위대한 결정체를 이루는 순간들이 탄생했다고 해도 좋겠다.]

 

뉴욕시티발레단을 창단하고 안무와 무용수 양성에 힘을 쏟은 발란신은 오늘 날 우리가 성탄 무렵 감상하는 『호두까기 인형』을 안무하기도 했으나, 정작 줄거리나 이야기보다는 추상적인 춤을 안무한 것으로 더 유명하다. 특히 그는 춤, , 몸으로 음악을 표현하려 했다는 점에서 남다르다. “음악을 보고 춤을 들으라”는 그의 말은 춤이 공간예술이면서 시간예술임을 통찰한 예술가의 요구다. 통감. 혹은 공감각(synaesthesia)적 상상력을 주문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공감각적 상상력은 하나의 감각경험이 다른 감각으로 표현되는 것을 말한다. 시인들도 종종 공감각을 통해 경험과 상상을 재현한다. 『신곡』(Divina Commedia, 1308-1321)의 「지옥」편에서 단테는 지옥을 “해가 침묵하는” (the region where the Sun is silent) 지역이라고 했다. “꽃과 시골의 신록, 춤과 프로방스노래, 햇볕에 그을은 명랑함의 맛을 지닌” (Tasting of Flora and the country green / Dance and Provençal song, and sun burnt mirth!)포도주를 상상하면서 공감각적 이미지를 맘껏 사용한 존 키츠(John Keats, 1795-1821)도 있다. 하나의 감각적 경험을 또 다른 감각으로 느끼거나 표현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그 사람은 감각 경험과 상상의 영역을 확대하는 사람이다.

 

우리 나라에서 감각경험의 다중적 차원을 제공해온 화음(畵音) 챔버 오케스트라의 프로젝트도 이와 비슷하게 청중에게 상상력의 확장을 요구한다. “음악이 보이고 그림이 들리는‘ 공간, 춤이 들리고 음악이 보이는 무대, 시간과 공간이 절묘하게 만나면서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는 순간들, 상상만 해도 멋지다.


글 신경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