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mentary
이 곡은 화음프로젝트의 위촉으로 이번 가을 작곡한 실내악이다. 기본적인 영감은 백정기 작가의 ‘내장산’을 토대로 하였다. 백작가님의 작품과 설명이 든 파일을 처음 열어보는 순간, 내겐 확 와 닿는 느낌이 있었다. 그것은 자연이 주는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이다. 오늘날 현대미술과 현대음악은 그 추상성에서 맥락을 같이 한다. 미술에서는 자연주의적인 사실묘사가 사라졌고, 음악에서도 협화음에서 나오는 자연적인 아름다움이 사라진 지 오래다. 미술작가와 음악작곡가들이 새롭고 창의적인 가치에만 몰두한 채, 온갖 추상과 철학과 미학적 의미를 작품에 부여하고 있을 때, 이미 대중은 예술로부터 멀어져 갔다. 여전히 ‘현대예술’은 모호하고 어려워야 하며 뭔가 불편하고, 부조리하고, 불협화적인 요소에 의해 대중이 생각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어왔던 터다.
하지만 백작가님의 작품은 그야말로 순수하고 자연스럽다. 사실 그대로이다. 겉으로 봐선 전혀 특징적인 게 없어 보인다. 그냥 내장산 단풍이 주는 아름다운 자연의 빛! 그런데, 작가는 그 단순한 평면의 사진을 위해, 아니 그 본질을 위해 실제 형형색색의 내장산 단풍을 모아 갈아서 염료를 만들어 잉크로 활용했다. 프린터로 출력한 똑같은 사진이건만, 그 안에는 내장산 자연이 준 그대로의 영감이 작품의 주요 모티브로 작용한 것이다.
‘Naturalism(자연주의)!’ 내 마음은 그 사진을 보자마자 그 주제를 가지고 내장산으로 가고 있었다. 작품구성이 이렇게 빨리 끝날 수가 없었다. 다음 주, 시간을 내어 거침없이 내장산을 향했다.
아직은 단풍이 절정에 이르지 못한 시기라 아쉽긴 했지만, 음악작품에 필요한 자연의 소리들을 녹음기에 담았다. 최소한의 자연주의를 위하여!
천천히 산을 오르면서 들려오는 ‘바람소리, 물소리, 이름 모를 산새소리, 그리고 낙엽 밟는 소리까지…’ 이러한 소리를 음악으로 구체화시키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나는 이 내장산 자연의 소리를 그냥 어쿠스틱 연주와 함께 듣기 원했다.
작품에는 크게 3가지 모티브가 있는데, 그것을 각각 ‘바람소리 주제’, ‘물소리 주제’, ‘새소리 주제’로 명했다. 정해진 주제들은 주로 3개의 연접음들인데, 그것의 음정간격은 계속 변하고, 음가의 비례 또한 계속 변한다. 주로 산을 올라가면서 녹음한 과정이기에 선적인 구성은 주로 상행음열로 되어 있다. 크게 3부분의 휴지부에서는 또렷이 산에서 얻은 소리들이 들려짐으로서 자연주의를 표현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