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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

[이카루스 콘서트] 현대음악의 궤적
신예슬 / 2015-06-15 / HIT : 1380

 

 

 

현대음악의 궤적

 

 

  - 신예슬

 

 

 

 그리스 신화 속 인물인 이카루스는 아버지 다이달로스와 크레타 섬의 미궁에 갇혔지만, 발명가인 다이달로스가 만든 밀랍날개를 이용해 미궁에서 탈출한다. 다이달로스는 이카루스에게 밀랍은 열을 받으면 녹으니 너무 태양에 가까이 가지 말라고 충고한다. 그러나 이카루스는 아버지의 충고를 잊고 태양에 더 가까이 다가가려한다. 결국 밀랍날개는 녹아버리고, 이카루스는 에게해에 빠져 죽음을 맞이한다. 이카루스 이야기는 보통 우리에게 과욕을 부리면 비극을 초래할 수 있다는 교훈을 준다. 2015 3 14일 오후 4, 엘지아트센터에서 열린 화음쳄버오케스트라의 청소년을 위한 현대음악 입문 공연제목은 이카루스 콘서트였다. 공연 후반부에 연주될 작곡가 임지선의 작품 제목이 이카루스였기 때문에 이 제목이 붙었겠지만, 왠지 이 공연 전체와도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임지선의 곡 이카루스는 이카루스의 추락보다는 태양을 향해 날갯짓을 멈추지 않은 이카루스의 강렬한 패기와 열정, 희망, 그리고 신의 세계로 날아가려 했던 이카루스의 마음을 그려낸다. 이카루스에게 더 가치있었던 것은 땅으로 무사히 돌아가는 것보다 그가 갈망하는 곳에 더 가까워지는 것이었다. 강렬하고 열정적인 이카루스의 여정을 그려내는 이 작품에서 임지선이 들려주고 싶었던 것은 이카루스가 꿈을 쫓는 여정이었던 듯하다. 이카루스의 운명을 곰곰이 되뇌어봤다. 꿈을 쫓아 하늘로 날아간 이카루스. 혹은 과욕을 부리다 추락해버린 이카루스.

 

 

 이 날 공연에서는 찰스 아이브스 Charles Ives 의 대답없는 질문 The Unanswered Question, 벨라 바르톡 Béla Bartók의 현악사중주 4 4악장 String Quartet No.4 mvt. 4, 존 케이지 John Cage 4 33, 스티브 라이히 Steve Reich 의 박수음악 Clapping Music, 아르보 패르트 Arvo Pärt 의 벤자민 브리튼을 추모하는 성가 Cantus in Memory of Benjamin Britten, 필립 글래스 Philip Glass 의 바이올린 협주곡 미국의 사계절 중 4악장 Violin concerto No.2 The American Four Seasons Mvt. 4, 그리고 임지선 Jiesun Lim 의 화음 프로젝트 Op. 144 이카루스 Icarus가 연주되었다. 연주된 곡들은 모두 작곡가들이 자신들이 추구하던 가치를 뚜렷하게 표현한 음악들이다. 동시에 다가가기에 벽이 높지 않은 음악들이자 서양음악의 역사에서 중요한 지점을 차지하는 곡들이다. 앞으로 계속해서 나아가려 했던 현대의 작곡가들이 남긴 기념비이자, 무게감 있는 초석이다.

 

 

 청소년을 위한 현대음악 입문 공연으로서 이보다 더 제격일 수 없었다. 현대음악이라 불리는 음악들은 우리가 막연하게 음악이라고 생각했던 것들과 조금 다른 전제에서 출발한다. 아니, 그 전제들을 하나씩 점검하면서 시작한다. 이날 공연의 프로그램은 그 현대음악의 토대가 되는 전제들을 세련된 방식으로 비틀어내는 작품들이었다. 불협화음과 협화음은 과연 절대적인 것인가? 음악은 시간 안에 존재하는가? 박수도 음악이 될 수 있는가? 현대음악은 우리가 알던 음악을 의심하게 만든다. 우리가 음악의 원리라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논리였음을, 법칙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은 관습이었음을 알려준다. 동시에 이 작품들은 청중들에게 철저하게 외면당했던 작품들이라기보다는 어떠한 반향을 이끌어냈던 작품들이라는 공통점도 있다. 청중에게 반향을 이끌어낸다는 것은 청중과 교류할 수 있다는 것이 전제된 것이다. 완전히 새로운 논리 위에 쌓은 음악이 아니라 기존에 존재하던 음악의 개념을 살짝 꼬아낸 것, 이러한 점에서 이 날의 프로그램은 사람들에게 낯선 소리가 아닌 음악으로서 다가갈 수 있는 현대음악이었다. 현대음악분야에서 의미 있는 작품들을 낯설지 않게 들려준 이 공연은 현대음악의 중요한 궤적들을 되짚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타오르는 태양에 더 가까이 다가가려고 애썼던 신화 속 인물의 마음을 다시 생각해보는 것처럼, 자신들이 원하는 음악적 이상에 다가가려고 골몰했던 작곡가들의 마음이 남긴 흔적들을 살펴보는 시간이었다.

 

 

  1부의 곡들에서 느낄 수 있는 재미와 포인트는 각각 달랐다. 찰스 아이브스의 대답없는 질문에서는 세 개의 음악적 이야기가 펼쳐진다. 현악기군이 고요한 상태를 유지하듯 화음을 연주한다. 트럼펫이 질문하듯 짧은 음들을 연주한다. 목관악기군이 변화무쌍하게 반응한다. 아이브즈는 트럼펫은 '실존이라는 영원한 질문'을 던지는 역할이며 현악기는 '그 어떤 것도 보거나 듣거나 알지 못하는 드루이드 사제들의 침묵'을 나타내는 역할이라 말했다. 질문과 침묵, 그리고 변화하는 반응이 있지만 질문에 대한 명쾌한 답은 끝내 내려지지 않는다. 이 날 화음은 목관악기군을 무대 좌측에, 트럼펫을 우측에, 중앙에 현악기군을 배치해 그들이 각자 다른 태도를 보이고 있음을 무대의 위치로도 나타냈다. 피치카토로 연주되는 벨라 바르톡의 현악사중주 4 4악장은 상당히 리드미컬하고 우아한 분위기로, 섬세하게 톤을 조정해나가는 것이 곡의 묘미이다. 현악기 네 대의 피치카토 음향으로 엘지아트센터를 채우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네 명의 연주자는 무대의 가장 앞쪽으로 나와 관객들에게 시청각적으로 보다 가까이에서 연주를 들려주었다. 이후에는 존 케이지의 4 33초가 약간은 유머러스한 분위기 속에서 모두의 참여로 연주되었다. (연주가 끝나고 박수를 친 사람들도 모두 마땅히 박수를 받아야한다.)

 

 

 스티브 라이히의 박수음악은 나름의 연출과 함께 연주되었다. 작은 가면을 쓰고 나온 두 명의 연주자는 무대로 들어오며 연주를 시작했다. 두 연주자의 박수리듬이 함께 맞아떨어지거나 엇나가는 것은 연주자들이 함께 마주보거나 반대 방향으로 걸어가는 것으로, 즉 시각적으로도 연결되었다. 누구나 칠 수 있는 박수라는 재료로 다양한 리듬을 만들어낸 라이히의 작품에 관객들은 크게 호응했다. 아르보 패르트의 작품 벤자민 브리튼을 추모하는 성가에서는 어떤 절제된 형태로 나타나는 영적인 분위기와 흘러가는 시간을, 필립 글래스의 바이올린 협주곡에서는 익숙한 재료로 만들어진 집요한 반복으로부터 오는 낯선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이 흐름의 마지막에 위치한 임지선의 이카루스. 일러스트레이터 최보윤의 작품과 함께 감상할 수 있었던 이 곡은 신화를 다섯 개의 장면으로 나누어 들려주었다. 1부의 곡들에 비하면 상당히 긴 흐름이었음에도 작품에 대한 상세한 설명과 이카루스 신화라는 구체적인 이야기는 작품을 마치 이야기를 듣듯 생생하게 감상할 수 있게 했다. 이러한 것들이 기반이 되어 이카루스의 비행을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부분, 때로는 신비로운 분위기를 감각적으로 표현한 부분 등을 어렵지 않게 캐치할 수 있었고 음악을 천천히 따라가며 작곡가가 말하고 싶었던 바를 들을 수 있었다. 이카루스 이야기로부터 출발한 임지선의 작품은 다양한 음악언어와 음향을 사용했고 그 자신의 뚜렷한 색채가 내보였지만 벽이 높지 않았다. 이카루스는 현대음악이라는 음악에 깃들어있는 편견들과 멀리 떨어져있었다. 작곡가 자신의 목표를 드러내는 동시에 음악적으로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프로그램 외에도 공연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화음이 무대를 사용하는 방식이었다. 이 날 공연에서는 한 작품이 끝나고 시작할 때마다 모든 연주자가 퇴장하거나 움직이지 않았다. (한 예로, 아이브스의 대답없는 질문이 연주된 후에 바르톡의 현악사중주가 연주될 때 무대 위에는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모두 남아있고 조명만 꺼진 채 무대 앞쪽에 위치한 네 명의 현악기주자들에게만 조명이 켜졌다.) 이러한 점은 하나의 공연이라는 전체 안에서 각각의 부분을 이루는 곡들이 유기적으로 짜여있다는 인상을 주었다. 화음은 엘지아트센터의 넓은 무대를 구석구석 잘 활용했다. 연주자들의 위치나 움직임, 그리고 각 작품과 연주자의 위치에 맞게 조명을 활용한 점은 언제나 무대의 한 점을 바라보던 관객의 시선을 무대 구석구석으로 움직이게 하는 기폭제가 되었다.

 

 

 무대 디자인뿐 아니라 한 작품이 시작되기 전마다 계속 있었던 작곡가 임지선의 해설도 매끄러운 연결에 한 몫 했다. 임지선의 상세한 해설은 관객들에게 이 작품이 어떤 배경에서 탄생했고, 어떤 생각을 담고 있는지 알게 했다. 충분한 시간을 들여 작품에 대해 설명한 덕인지, 객석에서 무대를 호기심어린 눈으로 쳐다보며 작품을 궁금해 하는 태도를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현대음악에 입문하는 데 있어 이 작품이 '' 이런 모양새를 띠는지를 파악하는 일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할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관객들에게 작곡가들의 전반적인 사상과 작품의 논리를 상세히 설명한 점은 현대음악에 친숙해지는 데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1부에서 연주된 작품들이 20세기 음악들의 궤적을 찬찬히 훑어나가는 것 같았기 때문일까, 이카루스라는 인물은 현대음악의 메타포처럼 보였다. 현대의 작곡가들은 그들의 이상을 쫓다가 청중들에게서 멀어졌다. 이카루스는 신의 세계로 가고 싶다는 자신의 이상을 쫓다가 바다로 추락해버렸다. 임지선의 작품이 이카루스를 소재로 함에도 불구하고 비극적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은 상당히 인상적이다. 그들의 마음이 어디를 향해있었는가에 초점을 맞춰보자. 그들의 행로에서 우리가 보아야할 것은 그들이 어떤 이상을 가졌고, 어떤 흔적을 남겼는지이다. 열정적인 이카루스의 날갯짓은 바로 음악가들이 가졌던, 더 먼 세계로 나아가려했던 갈망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