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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내 눈동자 속의 뒷골목
민병모 / 2021-06-11 / HIT : 75

내 눈동자 속의 뒷골목

 

 

예술세계에는 음악도 있고 미술도 있고 시도 있다. 사람들은 이것을 따로 떼어 생각한다. 하지만 따로따로 생각해 볼 뿐이다. 그런 한편, 예술이 서로 통해 있다고 믿는 사람과 그렇지 않다고 믿는 사람이 있을 따름이다. 과연 예술이 통해 있다고 가정한다면 무엇으로 어떻게 통해 있을까!

<박수근을 만나다>는 화음챔버오케스트라의 러브스토리 중 하나다. 여기엔 미술과 음악이 서로 통한다는 믿음이 있다. 그 당사자인 박상연 지휘자는 이날 무대에 오르지 않았는데, 소규모 편성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번 연주회엔 박수근 화백의 그림 두 점과 최근 <박수근 미술상>을 받은 후배 화가들의 작품 두 점을 놓고 네 사람의 작곡가가 창작한 곡이 연주되었다. 나는 음악 비평가가 아니므로 여기서 전문적인 음악 비평은 할 수 없다. 다만, 미술 작품이 음악 작품으로 변환되었듯이 나도 내 식으로 음악 작품을 변환시켜 가면서 내가 느낀 감상을 비교적 솔직하게 적어볼 뿐이다.

 

박수근의 미술은 어떤 음악일까?

 

강원도 양구에 있는 박수근 미술관에서의 초연 때 프로그램이 참조되었는지 맨 먼저 흘러간 대중가요 <빈대떡 신사>(편곡 안성민)가 클래식으로 편곡되어 연주되었다.

이 노래가 히트한 것은 50년대지만, 처음 작곡된 때는 1943년이다. 이때 만 스물아홉 살의 박수근은 평양도청에 다니고 있었고, 아직 술 담배는 하지 않을 때다. 그의 부인 김복순 여사에 따르면 한창 신혼 때인 이 무렵 박수근은 아내에게 값비싼 양산 하나를 선물한 일이 있다. 어린 아들 성소를 업고 온종일 뙤약볕에 서서 일하는 아내가 안쓰러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를 이상히 여긴 아내가 캐묻자 일본인 상점에서 그만 슬쩍 훔쳐 온 것이라는 사실을 실토하고 결국 다음날 도로 갖다줬다는 애잔한 추억도 있다.

박수근이 술을 배운 것은 6·25 전쟁이 끝난 직후 지금의 서울 신세계백화점 자리에 있던 미군 PX 초상화부에 다닐 때이다. 이때 PX 초상화부의 단말직원이 훗날의 소설가 박완서였고, 이때의 이야기를 쓴 것이 나목裸木이다. 박수근도 열심히 초상화를 그려 서울 창신동 집을 장만했고, 저녁때면 막걸리도 한잔 걸칠 수 있었다.

그 뒤, 창신동 한옥 마루방을 화실 삼아 화가로 거듭났던 박수근은 오늘날 가장 한국적인 화가라는 말을 듣는다. 1950년대 말, 반도 호텔에 있던 <반도 화랑>이 생기면서 외국인들에게 제일 많이 팔린 그림이 박수근 작품이었는데, 그 이유도 가장 한국적인 그림이라는 평가였다는 것이다.

! 이런 박수근의 그림은 어떤 음악으로 태어났을까?

 

이재구 화음 프로젝트 Op. 195

당신의 눈빛이 나를 뛰놀게 한다

 

김진열 화가의 <눈 맞춤>(2015년 작)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이 곡은 플루트, 바이올린, 첼로의 3중주곡이다. 그림은 아빠가 아이를, 아이가 아빠를 바라보고 있다.

연주가 시작되면서 내 머릿속엔 수평선이 떠올랐다. 고압선의 전류가 느껴진다. 무슨 색인지 알 수 없는 바이올린의 수평선을 따라가다 보면 역시 어떤 두께인지 알 수 없는 첼로의 수평선과 만나 겹쳐진다. 이재구 작곡가는 이 부분을 이렇게 설명한다. “첼로와 바이올린이 만들어내는 불협화(2)에서 협화(3)로 해결되는 느리고 긴 지속음은 아빠와 아이의 눈 맞춤 순간을 상징한다라고.

이어 수평선에서 멀리 독도 같은 섬이 나타난다. 멋진 플루트 연주다. 플루트가 입안에서 토해낸 뾰족한 두 개의 섬이 구석구석 손으로 만져진다. 작곡가는 빠른 템포의 이 플루트 음형을 아이가 뛰노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라고 했다. 내게도 플루트 연주는 빠른 심장 박동을 보여주는 심전도 그래프처럼 느껴졌으니 작곡가의 의도가 정확히 전달된 셈이다.

이후 내가 즐긴 것은 각양각색의 눈빛이다. 눈빛이란 말이 필요 없는 세계 아닌가! 빨주노초파남보의 그 시신경 끝에서 첼로가 마지막으로 아빠와 아이의 뒷모습을 보여준다. 그런데 내겐 다소 의아했던 점이 하나 있었다. 화가의 그림은 쉬운데 음악은 매우 어려웠다는 점이다. 왜 같은 주제를 놓고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걸까.

 

조선희 화음 프로젝트 Op. 194

고목과 여인

 

조선희의 곡도 난해했다. 그래서 무대 뒤에 걸린 박수근의 그림을 자주 보았다. 그의 그림은 언제 봐도 소박하다. ‘소박素朴이란 말은 나무 밑둥치만 남은 상태를 가리킨다. 아무 군더더기 없는 세계! 그러니 나뭇가지가 다 잘린 <고목과 여인>은 소박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 그림이 평면적이다. 마치 낡은 손수건 한 장을 잘 다림질해 놓은 것 같다. 그래선지 빛이 바래 보이고 원근법도 사라졌다. 또 특이한 것은 우툴두툴한 질감으로 돌가루나 흙을 끼얹어 놓은 것 같은 인상을 준다. 이것이 그의 매력이고 독창적인 세계이다.

조선희는 고목에서 작가의 모습을 보았다고 했지만, 음악은 어느새 박수근을 떠나있다. 대신 나는 조선희의 모습을 만난다. 여자 스트라빈스키 같다. 미술은 이렇게 음악이 되었지만, 그 음악이 다시 미술로 돌아가진 않는다. 이런 사실은 많은 역설을 품고 있다.

가령, 미술 작품이 그대로 음악으로 재현될 수는 없다. 그것은 다른 세계이다. 마찬가지로 음악도 그 무엇으로 재현될 리 없다. 이를테면 이렇다. 이 곡을 들은 내 감상을 시적인 형태로 옮겨보면,

 

공중에 떠 있는

나무 한 그루

흐린 나이테를 잡아당기는 음악

첼로 음은

새의 부리처럼

짙은 옹이를 쪼아 먹는다

나무껍질로 치마를 해 입은

여인의 머리 위엔

고목 실뿌리가 놓친

흰 물줄기가 휘감겨 있다

 

, 이처럼 어려워지고 엉뚱해지면서 내 감상은 음악과는 별개의 것이 된다.

 

배동진 화음 프로젝트 Op. 181

구릉, 주름이 되어

 

자기 취향대로 작품을 비평하는 일은 쉽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그러나 어떤 이론이나 논리에 맞춰서 남을 비평하는 일도 마찬가지로 간단하다. 자기 취향을 유지하면서 어떤 이론이나 논리를 갖는 일만이 쉽지 않을 따름이다.

배동진 작곡가는 프로그램 소개에서 황재형의 그림을 처음 마주했을 때 얻은 몇 개의 이미지에서 곡이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 “아주 작은 셈여림에서 큰 셈여림으로의 긴 진행을 통해 중첩된 능선의 거리감을 담았다라고도 했다. 내 생각에도 그의 곡은 그림과 가장 닮았다.

화가 황재형은 강원도 탄광의 칙칙한 풍경만 그려와 배가 고팠는지 태백 준령의 설경을 대형 화폭에 담아냈다. 그림이 압권이다. 나는 배동진 작곡을 들으며 언젠가 읽었던 일본 시인 다무라 류이치의 시가 계속 생각났다. “눈 위에 발자국이 있었다.”로 시작되던 그 시. 다람쥐 한 마리의 발자국을 묘사했던 그 시, 아마도 느릅나무에서 내려와 오솔길을 가로질러 왜전나무 숲속으로 사라져갔던 그 발자국, “거기엔 아무런 순간적인 주저도 불안도 영리한 의문부호도 없었다라고 해서 말할 수 없이 감동한 적이 있었다.

그렇다. 황재형의 그림엔 발자국조차 없었지만, 배동진의 음악에선 그 발자국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이 곡이 덜 난해한 것을 두고 송주호 음악 비평가는 그림의 서사구조를 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라고 했다.

그러나 내게 현대음악은 모두가 난해해서 우열을 가릴 수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것은 왜일까?

예술이 서로 통한다고 믿는 사람들의 착각 중의 하나가 감동을 공통분모로 삼는 것이다. 현실은 어떤가! 현대예술은 이미 서정적인 감정의 세계를 떠나 자아탐구에 나섰고, 새로운 지적 감각의 영역을 개척하고 있다. 난해해서 감동할 순 없지만, 난해해서 흥미로울 때도 많다. 새로운 종류의 카타르시스다. 인간으로서 이제껏 느껴보지 못한 세계를 펼쳐 보이는 것이다.

 

김성기 화음 프로젝트 Op. 180

골목길

 

창작자는 어떤 작품에든 반드시 자기의 자의식을 삼투합 시킨다. 그렇다고 자의식만으로 창작하는 것은 아니다. 창작의 세계에는 과학에서 말하는 순수한 물, H20는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머리를 쥐어짠다고 해서 곡이 태어나지는 않는다. 진정한 생각들은 바깥에서 오기 때문이다.

김성기 작곡가는 <골목길>을 작곡하면서 “1950년대 60년대를 삶의 일부가 되살아오는 느낌이라며 박수근의 화폭에 담긴 색채를 표현하기 위해 현악기 트리오를 택했다고 말하고 있다. 그의 음악을 들으며 자꾸 머리가 가렵고 대뇌피질이 꿈틀거리는 것은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한방의 침과 뜸 자리처럼 뇌세포는 머릿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통점처럼 몸 곳곳에 퍼져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는 자꾸만 그것을 건드리고 있다.

우리의 기억은 과거를 반추하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외부로부터 받는 자극에 따라 끊임없이 재생되면서 새로운 이미지를 모델링하기도 한다. 구름이 비를 만들고 비가 구름을 만들 듯이 미술은 음악이 되기도 하고, 그 음악은 다시 시가 될 수도 있다. 이것이 예술의 변증법일 것이다.

그러나 내게는 여전히 의문이 남았다. 나에게 현대음악의 난해함을 왈가왈부할 권리나 논리체계는 없지만, 그 난해함이 때로는 갑옷처럼 느껴진다. 갑옷이 안전은 하겠지만 상당히 무거우리라고 생각할 뿐이다.

지금 내 눈동자 속의 뒷골목에는 무엇이 있을까. 창신동 집 마루에 앉아있던 박수근은 1963년 마흔아홉의 나이에 왼쪽 눈이 뿌옇게 잘 보이지 않아 안과에 다녔으나 가난으로 수술을 미루다가 끝내 실명을 하고 말았다. 온순한 성품으로 평생 말다툼 한번 하지 않았다는 그가 눈으로 본 것은 그림이 되었고, 그 그림은 다시 음악이 되었다. 당분간 내 눈동자 속의 뒷골목 어딘가에 있을 7명의 연주자에게 박수를 보내며 글을 맺는다.

 

민병모 (월간 퀘스천편집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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