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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화음 프로젝트 Op. 66-말하다! 기억이여!
성혜영 / 2008-08-11 / HIT : 532
기억이란 얼마나 깊고 넓은가? 수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가지가지 방법으로 존재하는 과거. 그것을 이미지로 표현하는 것은 얼마나 가능한 것일까? 그 이미지를 다시 음악으로 재창조하는 것은 또 얼마나 가능할까? 이미지로 소리로 새롭게 재현된 기억은 실제에 얼마나 가까울까? 아니 기억 자체는 삶을 얼마나 충실하게 복기할 수 있는 것일까? 화음 프로젝트 Op. 66. 전상직의 "Beyond Description for Strings"를 들으면서 떠오른 생각들이었다. 

삶이 기록된, 폐기된 필름을 모으고 재조립하여, “물질과 빛의 상호작용에 의한 재료의 실험과 가능성을 탐구”했다는 김범수의 작품, 'Hidden Emotion'과 'Contact'가 무대 양편에 놓여 있다. 필름 속에 담겨있던 다양한 삶은 새로운 조형언어로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되었지만, 그 속에 들어 있던 희로애락의 다양한 내러티브는 더 이상 없다. 아니 보이지 않는다. 

그 추상적 이미지 속에 숨어 있는 무궁무진한 이야기들을 과연 음악은 어떻게 환기시켜 줄까? 그것은 이미지와는 또 어떻게 다를까? 등등의 호기심이 "Beyond Description"에 대한 내 기대를 증폭시켰다. 

현의 울림은 다양하고 풍부했다. 때로는 미세한 음색의 변화로 같은 듯 다른 시간의 흐름을 보여주는 듯했고, 때로는 피할 수 없는 운명처럼 파도가 되어 덮쳤다가, 이내 햇살이 부서지는 한없이 잔잔한 수면이 되기도 하는 강약의 변주가 인상적이었다. 청각보다는 시각적 조형언어에 익숙한 나에게 전상직의 음악은 기억의 아상블라주에 의한 변주- 시시각각 변화하는 인상주의 회화처럼 다가왔다. 

그러나 기억의 편린들이란 불가피하게 시간 속에 희석되고 풍화될 수밖에 없어서일까? 아름다운 현의 울림 속에, 깊고 푸르게 살아 있어야 할 굴곡진 삶의 이야기들이 구체화되지 못하고 가볍게 흩어져 버리는 느낌은 조금 허무했다. 한여름 밤의 꿈처럼.

미술이든 음악이든 모든 예술은 삶이라는 질료를 바탕으로 하는 것일 터, 그 추상적 기호 속에 담겨 있는 다양한 이야기의 의미를 발견하는 것은 결국 우리 자신의 몫으로 남는다. "말하라, 기억이여!"는 미술이나 음악이 아니라, 각자의 경험과 기억의 골짜기를 향해 외쳐야 할 주문인 듯하다. 그것만이 김범수의 “숨겨진 감성”과 전상직의 “설명과 묘사를 넘어” 더 깊은 자신과 더 넓은 세상을 만나는 방법이 아닐까. 

그 만남('Contact')을 주선하는 축제의 밤. 화음 챔버 오케스트라의 제 30회 정기 연주회는 자유롭고 분방한 조영창이 협연한 하이든의 첼로 협주곡이 있어 더욱 즐거운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