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글로벌메뉴



리뷰

아, 쇼스타코비치~
김연 / 2007-03-17 / HIT : 560

이번 연주회를 통해 칼 닐센과 오에도엔 파토스라는 이름을 머릿속 작곡자 리스트에 추가하게 되었습니다. 앎의 기쁨은 삶의 구원이지요. 일신우일신, 절차탁마 하는 화음에 먼저 지지와 경의를 표합니다. 

보드라운 애피타이저 닐센의 곡에 이어 라이너 목의 비올라 협연이 이어졌지요. 파토스와 요한 네포무크 훔멜의 곡으로. 자유자재하면서도 깊이가 느껴지는 보잉. 겸허한 경계인의 악기인 비올라 소리에 흠뻑 빠져 있었습니다. 

인터미션에 이은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의 현악 4중주 3번(오케스트라 편곡: 미치노리 분야)

여러 불편함을 무릅쓰고 연주회장을 굳이 찾았던 이유의 8할은 쇼스타코비치 때문이었습니다. 돌아보면 쇼스타코비치란 음악가의 이름을 함부로 발설할 수 없던 시대도 살았지요. 윤이상만큼은 아니었다 하더라도. 
쇼스타코비치는 내 푸르렀던 젊은 시절엔 영웅적인 소비에트 음악 전사였고 달콤 쌉사름한 쵸코렛같은 로망스와 재즈슈트의 작곡가라는 과도기를 지나 이즈음엔 그의 회상록을 쓴 볼코프의 증언대로 ‘냉전 독재 체제에 의해 희생된 비극적 예술가 또는 내면적 반체제 인사’ 쪽으로 기울어져 있습니다. 한 번도 균형에 이르지 못한 삶처럼 그에 대한 나의 평가도 좌에서 우로 혹은 우에서 좌로 어지럽게 저울추가 움직이고 있는 것이지요. 

연주회 프로그램에 따르면 1946년에 작곡된 곡이더군요. 그가 바이올린협주곡 1번을 완성했던 1948년엔 스탈린 정권에 의해 ‘인민의 적’으로 찍혀 자살을 생각할 만큼 괴로웠다는 기록도 있으니 굵은 안경테 속의 선병질적인 외모만큼이나 초조 속에 이 곡을 작곡하지는 않았을까, 서랍을 위해 작곡한 곡과 살기 위해서 작곡한 곳이 있었다고 하는데 이 곡은 어떤 곡이었을까, 관제행사음악에 주로 사용되었던 교향곡이 아닌 실내악이었으니 내면의 풍경을 여과 없이 드러내지는 않았을까, 뭐, 이런 어지러운 상념 속에 연주가 시작되었습니다. 

기존의 현악 4중주보다 훨씬 더 부드러워지고 풍부해지고 화려해졌단 느낌이 들었습니다. 물론 편곡에서 관악 파트가 더해졌으니깐 그러기도 하겠지만 쇼스타코비치의 모던함이나 곡 이면의 비의를 살리려는 편곡자의 의도는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다 보니 불안, 냉소, 분노, 초조, 암담, 절망....... 이런 키워드들이 줄레줄레 떠오르더군요. 현악기만큼 위의 키워드들을 순정하게 표현할 수 있는 게 있을까. 온 몸의 신경세포 하나하나가, 혈관들이 푸들푸들 떨다 못해 뚝뚝 말라 바스라지는 그 절체절명의 순간을. 
2악장과 3악장은 바로 그 절체절명의 순간이었습니다. 원곡에 피치카토가 저렇게 많이 있었나?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피치카토의 향연이었습니다. 바하의 코랄을 변주했다는 5악장은 다 괜찮다고, 토닥여주는 위무의 따뜻한 손길이었지요. 

갈 길이 멀어 음악회장을 서둘러 빠져 나오면서 찬 공기 속에 섰을 때 가졌던 의문에 이런 답변의 목소리가 들리더군요. 그가 ‘사회주의의 소방수’ 의 총대를 메고 소비에트 예술가의 답변을 내어 놓았으면 또 어때? 살아남는다는 건 어떤 체제나 이데올로기를 떠난 인간존재에 대한 정언명령이 아니던가. 그가 '공산당의 충성스러운 아들'이었든 '어리석은 군중에 맞서는 외로운 개인'이었든 로스트로포비치에게 했다는 그의 말처럼 어떠한 바람 속에서도 꿋꿋이 살아남아 인간을 옹호해야 하는 음악 전사로 평생을 살았을 것이라고, 그리하여 모든 이가 다 떠나도 끝내 그 땅을 떠나지 않고 인민들과 살아남았던 거라고. 

하여 이런 소망 하나도 떠오르더군요. 다음에 다시 쇼스타코비치 음악을 듣게 되거든 그저 온 마음으로 빈 마음으로 인간을 옹호한 그의 음악을 오롯이 즐기고 싶노라고. 인간은 기대할 만한 가치가 있는 존재, 이긴 한 건가 하는 화두 하나 붙잡고서.

뱀발 
솔로몬 볼코프의 책 ‘증언’에서 쇼스타코비치가 오스트로프스키 소설 ‘강철은 어떻게 단련 되는가’를 형편없는 소설이라고 했다는 대목에서 정말 많이 웃었습니다.......플래시백의 시간이었던 연주, 다시 한 번 잘 들었다는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