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글로벌메뉴



자유게시판

[畵/音.zine vol.8] 박현의 연주 에세이 - 모티브의 재발견 No. 4: 쇼스타코비치 <챔버 심포니 2번>…
화음뮤지엄 / / HIT : 11

박현의 연주 에세이 - 모티브의 재발견 No. 4

쇼스타코비치 <챔버 심포니 2번> 2악장 '주제와 변주'

박현 (바이올리니스트)

  


  지난 2023년 9월 26일 화음챔버오케스트라 공연 연습을 위해 받은 쇼스타코비치 악보를 열자 익숙한 글씨체의 손가락 번호가 눈에 띄었다. 누가 쓴 것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악보 표지에 쓰인 연주자들의 서명이나 악기 대신 연주자 이름을 적어놓은 큐사인을 발견할 때면 당시 함께 했던 동료들에 대한 추억이 떠올라 웃음 짓기도 한다. 음정을 정확히 잡을 수 있도록 계산되어 핑거링이 완벽히 정리된 악보를 보니 흐릿했던 2014년 초연의 기억이 금방 되살아났다.


  오랜 기간 화음의 리더였던 미치노리 분야(Michinori Bunya)가 꾸준히 작업한 쇼스타코비치 챔버 심포니 시리즈는 화음이 가장 열성을 다해 연습하고 많은 에너지를 쏟아냈던 프로젝트 중 하나였다. 쇼스타코비치의 <현악사중주 2번>을 오케스트라 편성으로 편곡한 <실내교향곡 2번>은 원곡의 규모나 다채로움을 더욱 극대화 시킨다. 미치노리 분야는 현악사중주 성부에 플루트, 피콜로, 오보에, 클라리넷, 베이스 클라리넷, 호른, 바순, 그리고 타악기(베이스 드럼)을 더해 이 곡의 교향곡적 면모를 부각시켰다. 또한, 관악과 현악의 페어링을 통해 음색의 층을 두텁게 하고 성부간의 짜임새를 더욱 입체적으로 만들어 냈다. 작품의 네 악장은 각각 서곡, 레치타티보와 로맨스, 왈츠 그리고 주제와 변주로 이미 현악사중주보다는 심포니에 가까운 구성을 가지고 있다. 이토록 거대한 작품의 화려한 피날레인 4악장의 주제와 변주의 모티브는 어떻게 이루어졌을까?


  악장의 도입부는 [악보 Ⅳ-1]에서 보이듯 아다지오(Adagio)템포 안에서 현악 유니슨으로 연주되는 두 마디 프레이즈로 시작된다. 느린 들숨과 날숨의 모양을 한 B♭단조 동기는 이분음표 E♭에서 7도 상승했다 제자리로 돌아오며 질문과 같은 여운을 남긴다. 이어지는 제1바이올린 솔로의 화답은 팔분음표 리듬으로 움직임이 빨라지지만, 상행했다 하행하는 음정으로 앞선 질문의 선형을 유지한다. 첼로 성부가 던진 마지막 질문 모티브에는 제2바이올린 솔로가 화답한다. 제2바이올린은 네 마디로 연장된 호흡 안에서 반음계로 조성을 이동시켜 악장의 주된 조성인 A단조에 다다른다.

 

 

98801bd556078b74abfedf194019d63d_1707636
악보 1. 서주, 마디 1-4

 


  이제 악장의 진정한 주제인 A단조 선율이 비올라에 의해 연주된다. 모데라토(Moderato)로 너무 느리지 않게 이어가는 담담하고 처연한 노래이다. 이 주제는 무소륵스키 오페라 <보리스 구두노프>의 바순 선율과 쇼스타코비치의 <피아노 트리오>를 연상시키며 러시아적 감성을 불러일으킨다. 14마디로 이루어진 주제 선율은 [악보 Ⅳ-2]의 첫 네 마디 모티브에서 출발한다. 이 모티브 역시 4도 상승했다 7도에서 내려오는 처음 질문 모티브의 선형을 따른다. 이 선형은 빨라졌다 느려지는 악장 전체의 템포 구조에도 적용된다.

 

 

98801bd556078b74abfedf194019d63d_1707636
악보 2. 주제 선율

 


  4/4박자의 비올라 주제는 그대로 제2바이올린, 피콜로, 첼로 순으로 이어지고, 제1바이올린에 의해 주제는 삼연음 리듬을 통해 변주된다. 제1바이올린의 삼연음 변주는 상승된 동력으로 다음 변주를 3/4박자의 알레그레토(Allegretto)로 자연스럽게 변화시킨다. 이때부터 각 변주는 섹션의 구분 없이 이어지고, 단순한 주제 반복이 아닌 주제의 조각들로 동기발전을 한다. 주제를 가진 성부뿐만 아니라 반주를 담당하는 다른 파트들도 주제의 동기를 나눠 가진다. 각 변주의 템포도 단계적으로 빨라지고 종결을 향해 점차 느려지는 구조로 상승했다 하행하는 질문 모티브의 선형을 따른다. 사분음표 기준 메트로놈 속도 116의 알레그레토는 두 번의 피우 모쏘(Piu mosso)를 거쳐 152까지 상승한 뒤, 다시 알레그로 논 트로포(Allegro non troppo) 150, 알레그로(Allegro) 126으로 느려져 처음 서주와 같은 아다지오(Adagio) 템포로 돌아간다.


  제1바이올린 변주가 끝나고 관악 앙상블이 다음 변주를 이끈다. 바순에서 시작한 주제의 모티브 조각은 네 마디 단위로 오보에, 클라리넷으로 옮겨가며 대위적으로 전개된다. [악보 Ⅳ-3]에서처럼 호른은 주제 선율의 첫 다섯 음 동기를 단호한 강세가 더해진 사분음표로 연주하며 바순과 더블베이스의 빠른 변주를 제어한다.


 

98801bd556078b74abfedf194019d63d_1707636
악보 3. 변주와 호른의 주제 동기, 마디 110-112

 


  현악 저음부, 바순과 호른의 팔분음표 변주에 클라리넷과 제1바이올린, 피콜로가 화답한 뒤, 제1바이올린의 십육분음표 변주로 에너지는 더욱 상승한다. 바이올린의 변주는 여린 스피카토(spiccato)에서 포르테 마르카토(marcato)로 주법을 변화시키며 더욱 강렬해진다. 현악 저음부가 주제 동기를 연주하는 구간은 나머지 전 성부가 동형 리듬으로 화성을 만드는데, 바이올린은 4성 화음을 내림활로 쓰며 각 음의 마찰을 극대화시킨다. 이어지는 변주에서 음역이 높아진 바이올린은 피콜로와 클라리넷 유니슨에 의해 단단히 받쳐지고, 오보에와 비올라 유니슨과 대치한다. 이때 첼로와 베이스의 페달 톤에 베이스 드럼의 트레몰로가 더해져 28마디 동안 긴장을 지속시키는데, 연주 당시 베이스 드럼의 울림이 무대 바닥에 전해져 그 떨림은 배가 되었다. 깊게 깔린 베이스 위로 바이올린이 한 옥타브를 더 높여 연주하는 날카로운 주제 동기는 대비를 이루며 곡을 위아래로 팽창시킨다.


  바이올린의 강렬한 삼연음 변주로 긴장은 최고조에 이르지만, 곧 알레그로 논 트로포(Allegro non troppo)로 템포가 안정되며 밝은 스케르초 스타일의 변주가 이어진다. 첼로가 팔분음표를 지속하며 한 번 더 숨을 고른 뒤, 사분음표로 변화하며 자연스럽게 알레그로(Allegro)로 속도를 회복한다. 빠른 템포 안에서 마치 삼연음처럼 들리는 첼로의 사분음표 리듬은 섹션 끝까지 지속되며 두 바이올린의 질문과 화답을 뒷받침한다.


  곡의 종결부에서는 처음처럼 아다지오(Adagio) 템포안에서 서주 모티브가 재현된다. 서주와 달리 질문 모티브는 관현악 유니슨에 의해 연주되고 이에 솔로 바이올린이 응답하며 보다 장중한 분위기를 만든다. 처음 비올라가 제시했던 주제 선율은 현악 성부에 의해 느린 리듬으로 펼쳐진다. 이어 [악보 Ⅳ-4]에서처럼 마지막 여덟 마디부터 관악기가 더해져 주제 동기를 한 번 더 극적으로 강조하며 끝맺는다. 현악사중주 버전에서 비올라가 연주하는 아르페지오는 호른과 베이스 클라리넷이 맡아 더욱 웅장해지는데, 베이스 드럼과 함께 만들어 내는 fff로 다이나믹의 절정을 이룬다. 긴 변주곡의 끝이자, 교향곡적 현악사중주의 마지막 악장에 걸맞은 거대한 피날레이다.


 

98801bd556078b74abfedf194019d63d_1707636
악보 4. 곡의 엔딩, 마디 402-408

 

COMMENT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