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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畵/音.zine vol.6] 박현의 연주 에세이 - 모티브의 재발견 No. 2: 슈베르트 <죽음과 소녀> 2악장의…
화음뮤지엄 / / HIT : 90
박현의 연주에세이 - 모티브의 재발견 No. 2
슈베르트 현악사중주 <죽음과 소녀> 2악장의 ‘죽음’ 모티브
박현 (바이올리니스트)


  “...내가 사랑을 노래하면 그것은 고통이 되고, 고통을 노래하면 사랑이 된다...” 

  슈베르트는 1822년, 그가 21세에 쓴 “나의 꿈”[1]이라는 짧은 글에서 위와 같이 고백한다. 슈베르트 사후에 공개된 이 글은 소설보다는 자전적 이야기에 가깝다. 사랑과 고통 그리고 죽음에 대한 그의 감정을 엿볼 수 있는 이 글엔 아버지와의 갈등과 화해, 어느 처녀의 장례식에 대한 이야기도 담겨있다. 슈베르트는 이듬해인 1823년 매독에 걸리고 31세로 세상을 뜨기까지 여러 병을 앓으며 극심한 몸과 마음의 고통을 겪는다. <겨울 나그네> <마왕>, <미완성 교향곡>에서와 같이 나약한 존재와 죽음의 운명이 이루는 대비는 종종 그의 음악의 영감이 되었다. 오늘 이야기할 <현악사중주 14번> 역시 죽음의 모티브를 담고 있다. 사랑과 고통의 양극사이에서 고뇌하던 23세의 슈베르트는 ‘죽음’의 존재를 어떻게 기악 음악 속에 풀어냈을까?

  슈베르트가 1824년 완성한 <현악사중주 14번 d단조>는 사후 붙여진 ‘죽음과 소녀’라는 부제로 더 많이 불린다. 슈베르트는 2악장의 주제 선율을 그의 가곡 <죽음과 소녀, D.531>(1817)에서 차용하였다. 2악장 주제의 직접적 연관 외에도 마티아스 클라우디우스의 <죽음과 소녀> 시상이 현악사중주 전 악장의 영감으로 작용한다. 2악장은 주제와 변주곡 형식으로 슈베르트는 가곡의 피아노 도입 선율을 주제로 삼아 다섯 개의 변주를 만들었다. 가곡의 시는 두려움에 떠는 ‘소녀’와 유혹하는 ‘죽음’의 대화 두 부분(연)으로 이루어지지만, 음악은 시에서 묘사하지 않은 장면과 감정을 표현한다. 전주는 죽음이 다가오고 있음을 후주는 소녀가 끝내 죽음에 다다랐음을 짐작케 한다.

  2악장에서 완전하게 인용된 피아노 선율은 가곡의 전주, 즉 ‘다가오는 죽음’의 선율이다. 악보 1.에 표시된 가곡의 모티브는 d단조의 8마디의 선율로, 느린 걸음과 같은 이분음표와 두 개의 사분음표로 이루어진 리듬으로 펼쳐진다. 슈베르트는 현악사중주에서 이 주제를 g단조로 옮기고 16마디를 더해 G장조로 끝맺는 구조로 확장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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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보 1. 가곡 <죽음과 소녀> 전주 선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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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보 2. 현악사중주 2악장 주제, 1-24 마디

  악보 2.에 표시된 마지막 두 마디는 장조로 변모되어 시의 끝에 “내 품안에서 편히 잠들라”라고 말하는 죽음의 말과 부합된다. 이 순간은 두렵고 어두웠던 죽음을 결국 빛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소녀의 감정 변화를 나타내는 듯하다. 또는, 슈베르트가 말했던 “고통을 노래하면 사랑이”되어버리는 모순적 아름다움이 아닐까. 이 마디에선 두 바이올린의 B과 F#음이 조성의 변화를 결정짓는데, 이를 뒷받침하는 섬세한 다이내믹을 의미 있게 표현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주제 이후 전개되는 5개의 변주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리듬의 쓰임과 성부간의 짜임새이다. 이분음표와 사분음표 두 개로 이루어진 주제 리듬패턴은 변주를 더해가며 규칙적으로 분할된다. 각 변주를 거치며 리듬은 팔분음-셋잇단음-십육분음로 짧게 분할되고, 네 번째 변주를 지나 십육분음-셋잇단음-팔분음로 다시 긴 리듬의 주제로 돌아오며 대칭 구조를 이룬다. 인위적인 템포 변화 없이도 리듬만으로 긴장이 상승했다 늦춰지는 효과를 만들어낸다. 조성과 셈여림도 긴장의 상승과 하강에 따라 피아니시모(pp)에서 포르티시모(ff)로, 단조에서 장조로 이동한다. 

  성부의 짜임새 역시 주제와 각 변주에 따라 변화한다. 모든 성부가 함께 유니슨으로 연주하는 주제에 이어, 첫 번째 변주는 첼로의 반주 위로 비올라와 제2바이올린이 짝을 이루어 주제를 연주하고 그 위로 제1바이올린이 엇박자 리듬으로 대조적인 변주를 이끈다. 두 번째 변주는 첼로가 주제를 맡고 나머지 성부들이 대조적인 주법으로 리듬 반주를 한다. 세 번째 변주는 긴장이 가장 고조되는 섹션으로, 모든 성부는 포르티시모의 진한 음색에 짧은 강세까지 더해진 강렬한 팔분음표와 십육분음표 리듬을 연주한다. 제2바이올린과 비올라가 짝을 이뤄 주제를 연주하고 제1바이올린과 첼로가 이에 대응한다. 변주의 후반은 깊이 파고드는 첼로의 선율에 나머지 성부가 함께 십육분음표 리듬으로 포효한다. 이제껏 부드럽고 조용히 엄습하던 ‘죽음’의 주제와는 매우 대조적으로, 위협적으로 전진해오는 ‘죽음’으로 변모한 것이다. 이 변주는 장조가 아닌 g단조로 끝맺으며 ‘죽음’의 어두운 속내를 숨기지 않는다. 이어지는 네 번째 변주는 고전적 트리오를 연상시킨다. 평온하고 밝은 G장조의 새로운 선율을 제2바이올린이 연주하고 제1바이올린의 변주가 화답한다. 제1바이올린이 십육분음에서 셋잇단음으로 긴장을 풀고, 비올라가 팔분음으로 맥박을 늦추며 처음 제시되었던 주제의 G장조 종지가 재현된다. 하지만, 한번으로는 아쉬운 듯 네 번의 끝인사를 한다. 마지막 두 마디는 9화음을 만들어 꿈결같은 음색을 만든다. 소녀가 더 이상 뒤돌아보지 않고 빛으로 들어가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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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보 3. 현악사중주 2악장 종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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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슈베르트가 1822년에 쓴 “나의 꿈”의 원본은 슈베르트 사후 10년 뒤 슈만에게 전해졌고, 1839년 2월 슈만의 「음악신보」에 실리면서 대중에 공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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