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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畵/音.zine vol.5] 박현의 연주 에세이 - 모티브의 재발견 No. 1: 베토벤 <세리오소, Op. 95>…
화음뮤지엄 / / HIT : 114

박현의 연주 에세이 - 모티브의 재발견 No. 1

 

베토벤의 현악사중주, Op.95 ‘세리오소’(Serioso)​ 1악장

박현 (바이올리니스트)

 

<현악사중주 Op.95, ‘세리오소’(Serioso)>는 베토벤이 남긴 17개의 현악사중주 중 11번째 작품으로, <교향곡 5번>과 <피아노 협주곡 5번> 발표 이후인 1810년에 작곡되었다. 작곡 시기로는 중기에 속하지만, 일 년 전에 작곡한 <현악사중주, Op. 74>와 함께 후기로 가는 견인차 역할을 하며 중·후기 특징을 모두 보여준다. 앞선 <현악사중주, Op. 18>이 여섯 곡, <현악사중주, Op. 59>가 세 곡으로 이루어진 것과 달리, <Op. 74> 이후의 현악사중주는 곡마다 작품번호를 가진다. 이는 그가 따랐던 모차르트와 하이든 현악사중주의 세트 형식에서 벗어남을 의미한다. 베토벤은 <Op. 95>의 악보 머리에 ‘콰르테토 세리오소(Quartett[o] Serioso)’라고 명시하며 직접 표제를 붙였다. 이전 현악사중주들의 별칭이 출판사에 의해 추후에 지어진 것과는 대조적이다. <피아노 소나타 ‘비창’>, <교향곡 6번, ‘전원’>과 더불어 이처럼 베토벤이 직접 붙인 표제는 기악음악에 성격을 부여하는 ‘낭만적’ 요소의 이른 예이다. 또한, 베토벤이 작품에 자신의 정체성을 적극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했던 중기의 특징으로도 보인다. 이전 현악사중주들이 위촉자인 귀족 후원자들에게 헌정되었던 것과 달리 이 작품은 위촉 없이 작곡되어 베토벤의 오랜 친구인 음악가 니콜라우스 츠메스칼(Nikolaus Zmeskall von Domanovecz)에게 헌정되었다. 음악학자 조셉 커만(Joseph Kerman)은 이 시기부터 베토벤이 후원자나 대중에 맞춘 음악이 아닌 자신을 위한 작품을 쓰기 시작하였다고 주장한다.1) 베토벤이 출판을 제안했던 지휘자 조지 스마트(Sir George Smart)에게 이 작품이 대중 공연을 위한 것이 아님을 언급한 점2)과 초연까지 4년, 출판까지는 6년이 걸렸던 사실도 그 주장을 뒷받침한다.

 

화음챔버오케스트라는 지난 2022년 12월 19일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에서 열린 레퍼토리 프로젝트 공연에서 <현악사중주, Op. 59>를 연주했다. 이번에 연주한 말러의 현악오케스트라 편곡 스코어는 더블베이스 성부가 더해진 것 외에는 베토벤 원곡 형태를 유지했기에 현악사중주 악보와 거의 다름이 없다. 현악사중주를 현악오케스트라로 연주할 경우 음향적 힘을 얻는 대신 각 파트를 한 사람이 연주하듯 섬세하게 통일시켜야하는 어려움이 더해진다.

 

음악학자 마이클 스타인버그(Michael Steinberg)는 1악장의 폭발적 도입부를 ‘사납다’고 표현하였으며3), 작곡가 브루스 아돌프(Bruce Adolphe)는 베토벤의 불같은 성격과 ‘분노’가 이미 1악장에서 ‘압축적’으로 나타난다고 설명한다.4) 이렇게 묘사되는 베토벤의 음악적 성격과 표정들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폭발적 모티브

 

베토벤은 1악장에 ‘활기차게 빠른’(Allegro con brio)이라는 제시어를 주었다. 그가 요구하는 생동감은 매섭게 몰아치는 폭풍에 가깝다. 단단하되 무거워지지 않는 템포여야 한다. 악장의 강렬한 첫인상은 모든 성부가 함께 유니슨5)으로 연주하는 두 마디의 주제 모티브에서 만들어진다. 이 모티브는 F(파)에서 C(도)로 하행했다 다시 F(파)까지 상행하는 F단조 음계로, 십육분음표와 팔분음표로 전진하다 사분음표로 끝맺는다. 음표 길이는 배로 길어지고 있지만, 긴장은 늦춰지지 않는다. 오히려 E(미)의 이끄는 힘에 끌리듯 돌아온 F음은 쉼표와 남겨져 강한 울림을 자아낸다. 강렬함 뒤 침묵으로 만들어지는 극적 효과는 베토벤이 앞서 작곡한 <교향곡 5번> 도입부의 긴장감을, F단조의 어두운 톤은 베토벤이 같은 시기에 쓴 <에그몬트 서곡, Op. 84>을 시작하는 극적이고 장중한 음색을 연상시킨다. 

 

연주자는 첫 두 마디의 음형을 만들기 위해 활의 길이와 속도, 활이 닿는 현의 위치, 강세 그리고 음색에 대해 논의한다. 지휘자는 한 마디를 두 박으로 지휘하지만, 연주자는 두 마디를 한 호흡으로 묶기 위해 둘째 박에 내림활로 더해질 수 있는 강세를 최대한 피한다. 바이올린 섹션은 포르테(Forte)에 저항적인 음색을 더하기 위해 장력이 센 G현의 높은 포지션에서 연주하기로 결정했다. 뚜렷이 각인된 첫 두 마디 모티브는 악장 전체에 걸쳐 나타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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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 95 1악장, 1주제 모티브

 

 

압축된 구조

 

1악장은 제시-발전-재현-종결로 구분되는 소나타 형식을 따라 전개되지만, 그 방식과 속도는 매우 빠르다. 베토벤은 각 섹션 길이를 줄이고 모티브의 다양한 변주와 빠른 조성 변화를 150마디의 악장 안에 밀도 높게 이뤄낸다. 1주제 영역도 23마디로 매우 짧다. 1주제 모티브는 첼로에 의해 다시 등장하는데, 처음처럼 F단조가 아닌 G♭장조 음계로 조성의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약박에 얹힌 짧은 강세는 다이나믹을 제어시키고 곧 작아진다. 바이올린과 비올라는 긴 음으로 화성을 만들어 첼로를 반주하고 비올라가 십육분음표 동력으로 음계를 반음씩 상승시켜 F단조로 돌아온다. 처음과 같은 유니슨으로 F단조의 1주제가 반복되는 듯하나, 곧 반음씩 상승해 제1바이올린의 A♭음까지 이동한다. A♭은 F단조와 관계가 없는 D♭장조의 2주제 선율을 준비시키는 중요한 매개체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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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 95 1악장, 비올라에서 시작되는 2주제 선율

  

D♭장조의 2주제는 비올라로 시작해 첼로-제2바이올린-제1바이올린 순서로 두 마디씩 성부를 옮겨 연주된다. 이음줄로 연결된 두 마디의 부드러운 선율은 사분음표와 셋잇단음표 리듬을 통해 유연하게 흐른다. 하지만 선율의 안정감은 1주제의 사나운 모티브에 의해 깨진다. 두 번의 상승하는 스케일로 조성을 잠시 멀리 보내지만 결국 D♭장조의 짧은 종지로 돌아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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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 95 1악장, 발전부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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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 95 1악장, 종결부의 끝까지 활용되는 1주제 모티브 

 

 포르티시모(fortissimo)로 놀래듯 시작되는 발전부는 첼로에 의해 1주제 모티브가 F장조로 등장한 뒤, 두 마디마다 조성을 이동한다. 제시부에 쓰인 옥타브로 하강하는 부점 리듬 모티브도 발전의 재료로 활용된다. 재현부는 예상과 달리 1주제의 뒷부분부터 재현된다. 제시부에서 이미 충분한 극적 효과를 낸 첫 17마디는 과감히 생략되었다. 종결부 역시 첼로에 의해 D단조로 탈바꿈한 1주제 모티브로 시작되고, 약박에 더해지는 강세로 긴장감은 높아진다. 두 바이올린의 당김음과 비올라의 십육분음표가 대항하다 모든 성부가 합해지고, F단조 1주제 모티브를 조용히 재현하며 멈춘다. 폭발적이던 시작과 매우 대조적인 끝맺음이다.

 

이처럼 베토벤이 시작에 쏘아 올린 1주제 모티브는 성부, 조성, 다이나믹을 달리하며 각 섹션의 시작을 이끌고 발전에 다양하게 활용된다. 숨 가쁘게 변화하는 조성과 극적 전환으로 속도와 긴장은 끝까지 유지된다. 이렇게 1악장은 응축된 에너지로 베토벤의 진지한 음악세계, ‘세리오소’의 강렬한 첫인상을 남긴다. [畵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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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Joseph Kerman, The Beethoven Quartets, W·W·Norton & Company, 1966, p. 157

2) Seow-Chin Ong, “Open Forum: On the String Quartet, Op.95”, Beethoven Forum, Fall 2006, Vol. 13, No. 2, pp. 212–213

3) Robert Winter and Robert Martin, ed. The Beethoven Quartet Companion,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94, p.204

4) Chamber Music Society of Lincoln Center, Inside Chamber Music with Bruce Adolphe: Beethoven “Serioso” String Quartet

5) 유니슨(Unison), 같은 음과 리듬을 연주하는 동형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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