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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

[Monologue I: 날의 벽] 벽 앞의 생, 그리고 생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이들
이민희 / 2023-11-20 / HIT : 75

벽 앞의 생, 그리고 생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이들

이민희(음악평론가 )

 

Monologue I: 날의 벽

에르완 리샤(비올라), 클라리넷(조성호), 이헬렌(첼로), 배기태(더블베이스)
2023년 10월 4일(화), 11일(화) 오후 7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2023년 9월 6일-2024년 2월 25일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작가 정연두의 ‘MMCA 현대차 시리즈 2023: 정연두 백년 여행기’ 전시가 진행되는 가운데 작품 중 하나인 <날의 벽>(2023)에 영감을 받아 작곡된 4개의 창작곡이 2023년 10월 4일 및 10월 11일 <날의 벽>이 설치된 부스 안에서 초연되었다. 관객을 만난 음악은 각각 비올라, 클라리넷, 첼로, 콘트라베이스 독주를 위한 것으로, 네 곡에 걸쳐 총 40여 분간 공연되었다. 비올라에서부터 콘트라베이스에 이르는 연주 순서는 악기의 음역이 점차 확장되는 느낌을 동반하며 공연 전체를 일관된 느낌으로 이끌었다. 

 

  분명 정연두 작가의 <날의 벽>은 그 자체로 상당한 아우라를 지니고 있었다. 다만 그 앞에 비올리스트, 클라리네티스트, 첼리스트, 콘트라베이시스트가 홀로 선 채 연주를 시작하는 순간, 작품의 일부가 확장되며 또 다른 형태로 완성되는 느낌이었다. <날의 벽>은 세계 각국의 농기구를 설탕 뽑기 형태로 만들어 이를 쌓아올린 것으로, 작품이 놓인 공간에 들어선 이들은 각기 다른 지역에서 노동을 해야 했던 디아스포라의 고통을 ‘소리 없이’ 대면하게 된다. 이처럼 소리 없이 놓여 있던 농기구 앞에서 ‘독주’가 시작되자, 디아스포라 개인의 ‘인생’이 소리로 소환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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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기의 첼로 독주곡 <애니깽 노예들을 기억하며>를 연주하고 있는 김헬렌

 

 

생애들

 

  이재구 작곡가의 비올라 독주를 위한 <생동하는 분자들의 외침>은 비올라의 다양한 주법을 폭넓게 활용함으로써 ‘독주악기’로서의 면모를 과시했다. 개방현을 이용하는 트레몰로 패시지는 연주자가 비교적 편안하게 악기 본연의 소리를 내며 섬세한 프레이즈 표현할 수 있도록 했으며, 때때로 다소 격정적인 보잉을 들려줌으로써 ‘분자들의 외침’이라는 제목이 연상시키는 이미지 및 이민자들의 혁명과 투쟁을 떠올리게 했다. 또한 7/8박자를 비롯한 다양한 변박을 곳곳에 삽입함으로써 작품 전체에 긴장감을 부여했고 기계적이지 않은 자연스러운 리듬적 흐름을 창출했다. 한편 지속음이 주로 사용된 섹션에서는 누군가가 인생 내내 겪었을 고통이 떠오르기도 하였다. 연주를 맡은 비올리스트 에르완 리샤는 다소 복잡한 리듬처리나 프레이즈 등을 극히 음악적으로 표현했고, 곡의 처음에서부터 끝까지 차분한 집중력을 보여주었다. 

 

  장석진 작곡가의 클라리넷 독주를 위한 <설탕으로 만든 칼>은 클라리넷 특유의 길고 섬세한 프레이즈로 부스 안의 공기를 일순간 바꾸었다. 비교적 낮은 음역에서 시작한 느린 선율은 p에서 mp로, 또 mf에서 mp로 강세변화를 동반하며 점차 고음으로 진행했고, 토속적인 느낌을 주는 음계가 언뜻 감지됨으로써 이 음악 안에 ‘한인’ 테마가 숨어있음을 짐작하게 했다. 레가토 위주인 도입부가 감정적이고 위로를 주는 느낌이었다면, 이어지는 섹션은 다양한 현대주법을 들려줌으로써 듣는 이를 마냥 ‘평범한 위로’에 머물지 못하게 했다. 멀티포닉사운드, 에어사운드 및 사람의 음성을 섞어서 소리를 내는 독특한 현대기법 등 이제껏 진행되던 매끄러운 음악문법 안에 날것의 ‘현장 고발’을 침투시키는 모양새였다. 특히 리듬이 부재한 가운데 파열음과 불협화가 강조되었기에 ‘외로움’이나 ‘고통’ 등의 또 다른 정서가 연상됐다. 이어지는 섹션에서는 도약이 많은 음정을 스타카토로 표현했는데 이는 ‘노역’ 그 자체를 묘사한 것처럼 보였다.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 긴 호흡을 갖는 곡 초반의 선율로 되돌아옴으로써 그들의 삶이 역사 안으로 회귀하는 듯한 인상을 주기도 했다. 

 

  김성기 작곡가의 첼로 독주를 위한 <애니깽 노예들을 기억하며>는 앞서 연주된 곡과 달리 작품 초반에 토속적인 선율을 전면에 등장시켰다. 하지만 이 선율은 곧 중단되고, 피치카토를 동반하는 변형된 선율이 한동안 진행된 후 다소 낯설게 들리는 모티브를 거쳐 다시 토속적인 선율 단편이 등장하는 과정을 반복했다. 따라서 청자는 난해하게 펼쳐지는 소리의 흐름 안에서 최초의 선율을 계속해서 기다리는 한편, 토속적인 음계의 흔적을 찾고자 노력하게 되었다. 하지만 주제 선율이 다양하게 변형되었기에, 이를 귀로 듣고 추적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전반적으로는 중음 주법을 비롯한 다양한 도약 음정을 표현하는데 테크닉이 많이 필요했던 곡으로서, 이날 공연의 경우 음정 처리에 다소 아쉬운 지점이 발견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굴곡이 큰 장대한 흐름을 설득력 있게 표현한 연주였다. 

 

  임지선 작곡가의 더블베이스 독주를 위한 <디아스포라>는 주제 선율이 곡 전체에 걸쳐 간간히 등장한다는 점에서 김성기의 작품을 떠올리게 했다. 다만 임지선의 곡은 선율 제시부와 그렇지 않은 부분이 음역 및 리듬, 기법 등으로 보다 뚜렷하게 구분되며, 이 때문에 한인 디아스포라가 불렀다는 특정 선율을 보다 명확하게 음미할 수 있었다. 특히 이 선율은 하모닉스로 높은 음역에서 등장하거나, 편안하게 들을 수 있는 중음역에서 제시되었는데, 이는 콘트라베이스 특유의 낮은 음역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한편 저음의 개방현 및 중음을 토대로 만들어 낸 강한 뉘앙스의 음향들은 인간의 심연 혹은 삶의 복잡하고도 알기 힘든 밑바닥의 무언가를 연상시켰다. 때문에 비교적 고음으로 연주된 ‘한인의 노래들’이 상대적으로 더 높이 부유하는 것 같았다. 이런 감각은 작곡가가 언급한 ‘여정을 통과하는 디아스포라’의 움직임 그 자체일 것이며, 그 소리가 19세기의 그들에게서 21세기의 우리에게로 이동하는 과정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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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지선의 <디아스포라>를 연주하고 있는 더블베이시스트 배기태

 

 

미술관에서의 공연

 

  이날 연주된 네 개의 초연곡은 각기 다른 생을 담고 있었음에도 그 음악의 스타일이 어느 정도는 유사한 결을 공유했다. 그리고 이런 점은 <날의 벽> 안에 네 음악이 안정적으로 ‘포섭’되는 형태로 다가왔다. 물론 이 음악들 사이의 유사성이란 이들을 하나의 ‘시리즈’로 매끄럽게 이어줄 정도의 것으로서, 각 작품의 스타일이나 말하려는 바가 동일하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연주가 진행되는 동안 바로 옆 부스에서는 판소리를 비롯하여 기다유 분라쿠, 마리아치(mariachi) 등의 공연을 영상으로 재생하는 <백년 여행기>(2023)가, 또 그 옆 부스에서는 마임이스트의 무대를 보여주는 <백년 여행기-프롤로그>(2022)가 관객을 만나고 있었다. 이처럼 이날 전시되었던 정연두 작가의 작품 다수가 그 안에 ‘공연 현장’을 직간접적으로 드러내고 있었다는 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아이러니한 것은 정연두 작품의 이런 특성 때문에 옆 부스의 소리가 침범해 들어와 음악에 집중하는데 방해가 되었고 몇몇 지점에서는 작품 속 미세한 배음이나 특수주법 등을 제대로 듣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다는 점이다. 이는 미술관에서의 음악 공연에서 늘 벌어지는 일이기도 하다. 음악회장이 아닌 공간에서 연주되는 음악은 이런 점을 당연히 감내해야 하는지, 특히 이번 공연처럼 더 큰 맥락의 작품 안에서 음악이 연주될 때에는 이와 같은 음향 환경에 당연히 익숙해져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들었다. 

 

  그럼에도 <날의 벽>이 ‘실연’과 함께 제시됐기에 보다 복합적인 층위의 의미 창출에 성공했다고 단언할 수 있다. 음악이 결국 디아스포라 개인의 ‘생의 이야기’ 그 자체인 것은 물론, 이 소리를 듣고 있는 이들의 모습까지도 작품 ‘안에’ 구현했기 때문이다. 예컨대 <날의 벽>은 평소에는 벽체 형식의 오브제와 그것이 놓여 있는 텅 빈 공간으로 관객을 만나왔지만, 이날은 오브제 앞에 실제 연주를 하는 연주자와 그 연주자를 바라보고 앉은 관객이 완전한 형태의 ‘공연 현장’을 만들어냈다. 한 인간의 생애를 소리로 소환하고, 익명의 누군가가 이들의 생애에 ‘귀 기울이는 모습’까지를 작품 안에 담아낸 것이다. [畵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