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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

[제 41회 정기연주회 비평] 음악회의 기준이 된 음악회
송주호 / 2018-12-18 / HIT : 184

음악회의 기준이 된 음악회

|송주호(음악칼럼니스트)

 

모든 생활이 음악이다. 모든 것이 음악이다. ... 작곡가는 생활의 흐름을 리듬으로 듣기 때문에 작곡가이고, 보통 사람은 그것을 못들을 뿐.” (김순남, 1940년대 후반)

 

심장이 뛰고 있는 모든 사람은 그 리듬을 품은 음악가이며, 전문음악가는 이를 지각하며 표현하는 남다른 감각을 지닌 존재이다. 남다른 감각을 갖게 하는 능력은 무엇일까? 혹은, 어떤 능력이 이러한 남다른 감각을 갖게 하는 것일까?

 

공감능력

김순남의 말은 음악가는 남다른 감각능력을 갖고 있음을 말해준다. 음악가가 감각하는 것은 생활의 리듬, 즉 일상에서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것이다. 이러한 것은 사실 누구나 갖고 있지만 단지 느끼지 못하는 것인데, 음악은 이를 감각적으로, 그리고 이성적으로 깨닫게 해준다. 어떤 음악은 마음에 와 닿고, 어떤 음악은 피하고 싶기도 한데, 이것은 그 음악이 전달하는 리듬이 그 감상자의 삶의 리듬과 동조하느냐 혹은 하지 않느냐의 차이에서 온다. 차분한 사람은 조용한 음악을 선호하고, 활달한 사람은 경쾌한 음악을 좋아하는 경향은 이와 관련이 있다. 그래서 만약 차분한 삶이 경쾌한 음악을 좋아한다면, 우리는 그의 마음속에 겉으로 드러내지 않은 운동성이 내재되어있다고 추측하는 것이다.

이러한 동조는 감동으로 귀결된다. 예술이란 보통 사람들이 갖고 있지 않은 높은 수준의 능력으로서, 단지 능력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자극으로 사람들의 정신을 일깨워 인류를 이끄는 리더의 역할과 사명을 부여받았다. 작품이 사장되지 않고 리더로서의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감동을 통해 갖게 되는 영향력을 간과할 수 없다. 한 예술가의 작품이 당대에는 인정받지 못하다가 세월이 지난 후에야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인정을 받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것은 그 예술가가 현재가 아닌 후에 일반화될 삶을 앞서 감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동조를 일으키는 동인은 바로 공감이다. ‘공감이란 타인의 삶을 감각할 수 있는 능력이다. 다수의 타인의 삶에서 그 안에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면, 그러한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줄 가능성이 높다. 음악가라면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은 우선 작곡가 혹은 작품과 소통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만약 작곡가와 그 작품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재대로 연주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바이올리니스트 크리스티안 테츨라프는 새로운 곡을 준비할 때 오직 악보를 통해서 그 의도를 간파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이것은 작품과의 소통을 우선시하는 태도를 말해준다. 그리고 공감 능력은 관객과 소통할 수 있는 능력도 포함한다. 관객과 소통할 수 없다면 관객에게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결코 전달되지 못할 것이다.

사실 관객과의 소통은 언어로서 대화를 나누지 않는 음악에게는 매우 어려운 문제이다. 그래서 클래식, 특히 기악음악은 소통보다는 일방향적인 경향이 많이 보이곤 한다. 소통을 위해서는 기획의도부터 음악회 타이틀, 프로그래밍, 연주일, 연주시각. 연주장소, 연주자 등 모든 것을 고려해야 하지만, 공급자에게 가장 유리한 조건에서 음악회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음악회의 선택권을 갖고 있는 관객이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조건으로 음악회를 선택한다. 만약 이 두 유리한 조건이 우연히도 일치하면 성공적이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콘텐츠의 수준이 높다 하더라도 관객보다 빈 자리가 많을 가능성이 높게 된다. 이러한 결과는 잘못된 기획에서 기인하며, 잘못된 기획은 관객에 대한 공감능력의 부족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상상력

만화가 김진태의 인기연재만화였던 시민쾌걸에는 인상파라는 이름의 조직폭력배가 등장하는 에피소드가 여럿 있다. 그 중에는 그들이 한 영화관에서 조폭을 소재로 한 영화를 단체로 관람하는 내용이 있다. 관람 후 인상파의 두목인 이대봉은 영화의 내용이 현실과 너무 다르다며, 진짜 조폭의 삶을 영화로 만들자고 제안하고 부하들을 시켜 영화를 만든다. 그 제목은 리얼 조폭’. 하지만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모두 재미가 없다며 투덜대며 돌아간다.

리얼 조폭의 문제는 무엇일까? 바로 상상력이다. 상상력 없는 현실의 모습을 그대로 그리기만 한다면 관객에게 아무런 자극이 전해지지 않으며, 따라서 감흥이나 감동을 일으키는 것은 매우 어려울 것이다. , 공감을 위해 현실만을 인지한다면, 그에게서 새로운 자극으로 정신을 일깨워 인류를 이끄는 리더의 역할을 할 예술작품이 탄생되기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예술가는 현실을 뛰어넘어야 하고, 새로워야 하며, 리더쉽을 가져야 한다. 그렇기에 뛰어넘을 현실을 알아야 할뿐만 아니라, 또한 그 현실을 벗어나 새로운 지향점을 제시해야 한다.

이를 공연으로 가져와 보면, 객석과 분리되어 무대에 서는 예술가에게는 무대를 환상적인 공간으로 만드는 상상력이 요구된다. , 연극, 무용, 음악 등 무대는 (현실을 바탕으로 하더라도) 현실을 뛰어넘는 상상력으로 무대를 만들어야 한다. 파리의 68혁명 때에 걸렸던 그 유명한 슬로건 모든 권력을 상상력에게!”처럼, 권력적인 일상의 관습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상상력이 무대라는 또 하나의 세상을 만들고 지배하게 해야 한다.

음악의 경우로 더욱 범위를 좁혀보자. 대중음악의 공연이라면, 이미 그들은 자신의 작품과 무대를 환상적으로 꾸미는 데에 역점을 둔다. 선곡뿐만 아니라 뮤지션들의 춤, 위치, 조명, 소품, 심지어 각 뮤지션들의 표정까지도! 가수이자 프로듀서인 박진영(요즘은 ‘JYP’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언니들의 슬램덩크라는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언급했듯이, 그들의 모습은 일상의 과장이다. ‘과장이라는 상상력의 결과를 통해 관객들은 자신의 현실을 깨닫게 되며, 새로운 자극을 받아 자신의 삶을 수정한다. 실재로 팬들의 이러한 고백문을 종종 들을 수 있다. 관객들이 정상급의 대중음악을 듣거나 콘서트를 참석할 때 갖는 기대감은 이러한 새로운 자극과 관계가 있다.

클래식 음악의 경우는 이와는 달리, 일상의 축소 혹은 일상의 단절에 가깝다. 클래식 음악가들의 움직임은 연주에 집중되며, 따라서 동작은 최소화된다. 게다가 장소와 시대가 다른 음악들을 무대에 올림으로써 우리의 일상의 모습을 느끼기 어렵다. 이러한 점이 클래식 음악이 대중에게 관심을 끌기 어려운 이유가 된다. 그런데 사실 고전이라고 칭함을 받는다는 것은 장소와 시간을 초월했다는 의미가 아니던가! 그렇기에 클래식은 현실의 입장에서 일종의 도피와도 같은 순간을 제공하게 된다. 클래식 음악 감상에 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감성적 감정보다는 이성적 지식이 강조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 오히려 도피가 클래식이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거대한 가능성을 제공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오래 전부터 이야기되어온 음악의 추상성이나 19세기의 한슬리크가 음악의 형식을 강조한 것이 바로 오늘날에 있어서 클래식의 진지한 매력이 된 것은 이와 관련이 있다.

그런데 일상의 과장의 방향으로 익숙해져 있는 대다수의 관객들은, 그 대척점에 있는 낯설고 진지한 음악을 잘 받아들이지 못한다. 이보다는 일상이 묻어있는 낯익고 편안한 음악을 선호하는 경향을 띠는데, 이것은 음악회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현실을 반영하는 방향으로 선회하게 한다. 따라서 상상력을 오히려 감소시킴으로써 결국 예술로서의 새로운 자극이 아닌 현실적인 소비의 대상이 되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클래식의 대중화라는 슬로건이 초래할 수 있는 문제가 바로 여기에 있다. 따라서 클래식 음악과 공연이 오락이 아닌 예술로서의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작품을 작곡하고 선보이는 등 (주제가 현실적이라도 음악의 근본적인 추상성에 기대어) 상상력을 자극하는 작품과 프로그램, 무대를 만드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2018년 제41회 정기연주회

화음 쳄버 오케스트라는 이러한 점에서 매우 유리한 지점에 있다. ‘()’ 즉 시각예술을 통해 공감의 폭을 높이고, ‘()’ 즉 소리로 상상력을 극대화하기 때문이다. 매회 매진되는 그림책 음악회가 바로 그 전형적인 예이다. 하지만 여기서 더 나아가, 시각예술 또한 상상력을 자극하는 방향으로 기획해야 하며, 궁극적으로 시각과 청각이 융합되는 간매체(intermedia)를 지향해야 한다. 이것이 이 단체가 목표로 삼아야 할 지향점이다.

하지만 화음 쳄버 오케스트라는 정통 클래식 음악단체로서, 일반적인 음악회 형식으로 정기연주회를 열고 있다. 이것은 음악 교육을 받은 음악가들에게는 매우 익숙하고, 또한 가장 자신 있게 잘 할 수 있는 분야이다. 하지만 화음 쳄버 오케스트라에게 기대되는 것인가에 대해서는 고민할 여지가 있다.

그런데 이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음악회를 통해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상상력을 일깨우는 무대공간을 만드는 데 성공하고 있는가이다. 사실 무대에서 악기를 연주하는 기악 연주자의 경우는 모든 동작이 악기 연주에 집중되기 때문에 불리한 조건에 있다. 그래서 프로그램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높은 편이며, 기획 단계에서 공감과 상상력을 불러일으킬 프로그램을 짜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2018년 정기연주회 프로그램은 이러한 점에서 균형을 이루었다. 대다수의 관객에게 익숙한 멘델스존과 쇼스타코비치라는 이름, 아름다운 멜로디와 익숙한 음악으로 무장한 하차투리안, 그리고 모든 사람이 겪는 하루의 시간이라는 이미지는 공감의 열쇠가 되었다. 반면에 멘델스존의 (유명한 E단조가 아닌) 초기곡 <바이올린 협주곡 D단조>, 하차투리안의 음악이 그리는 발레의 장면들, 쇼스타코비치 <현악사중주 10>의 확대된 편곡, 그리고 작곡가 박영희의 <일몰의 광채>의 앙상블 버전 세계초연은 상상력의 끝으로 관객을 이끌었다.

특히 박영희의 <일몰의 광채>, 그리고 하차투리안의 <아다지오><칼의 춤>은 음악을 듣으면 시각적인 인상을 일으키는 공감각적 환상을 불러일으켰다. 주변에는 <일몰의 광채>을 듣고 새로운 작품에 대한 선입견이 완전히 깨어졌다고 고백하는 감상자가 있었으며, 또한 한 초등학생 감상자는 하차투리안의 작품을 듣고 큰 감명을 받은 나머지, 귀가한 후 그만 둔 발레복을 다시 꺼내 입고 춤을 췄다고 한다. 화음 쳄버 오케스트라는 그림이 없어도 새로운 자극을 유도해냈으며, 공감을 불러일으켰고, 감동을 줌으로써 생활의 모습에 영향을 준 것이다.

화음 쳄버 오케스트라는 음악회 무대를 구성함에 있어서 어떠한 기준을 가지고 어떠한 목적을 지향해야 할까? 그 기준은 공감과 상상력이며, 목적은 이를 구현하는 프로그래밍을 통해 화음 쳄버 오케스트라의 음악이 예술 작품으로서의 역할을 다하도록 하는 것이다. 2018년 정기연주회는 그 훌륭한 전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