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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

[조선통신사 프로젝트] 한국을 듣다
신예슬 / 2015-10-19 / HIT : 450
<한국을 듣다>

신예슬


다른사람이 바라보는 나와 내가 스스로 소개하는 나는 때로는 다르다. 다른사람이 나를 봤을 때야 비로소 내가 알게 되는 것도 있고, 내가 스스로 소개하지않으면 절대로 알려지지않을 나의모습들도 있다. 나를 이해하는데는 이 두개의 시선이 모두 필요하다.


2015년 9월 18일 금요일 오후 8시예술의전당 IBK 챔버홀에서 열렸던 화음쳄버오케스트라의 조선통신사프로젝트는 바로 한국이라는‘나’를 보는 이 두시선을 보여주는 공연이었고, 조선통신사공연에서‘나’와‘다른사람’은 바로 한국의 문화와 타국의 문화였다. 조선통신사라는 말은 일견 조선의 것만을 타국에 전달해준다는 인상을 줄 수도 있지만 이 날공연에서는 일방적인 전달이 아닌 문화적 상호작용의 접점들을 만날 수있었다. 


1부에서 연주된 클라우스후버, 루해리슨, 앨런호바네스의음악들은 한국을 보는시선들을 보여준다. 2부에서 연주된 임지선의 화음프로젝트 Op. 147 ‘흩어진기억과의만남’은 한국을 보여주러 일본에 갔었던 조선통신사의 여정을 보여준다. 타국인이 말하는 한국, 내국인이 말하는 한국은 어떻게 같고 다를까. 말로는 표현할 수 없고, 끝끝내 완벽히 밝혀내지못할 한국의 음악적 인상을 1부와 2부의 서로 다른시선을 통해 조금이나마 들어볼 수 있었다. (‘한국을 듣다’라는 제목은 올해 4월에 열렸던 서울대학교 서양음악연구소의 학술대회명이기도 하다.) 






연주회의 첫 순서는‘조선통신사를 생각하다’라는 해설이었다. 송지원국립국악원 국악연구실장은 충분한 시간을 들여 공연의 제목이자 주된기획의도인 조선통신사를 설명했다. 조선통신사가 어떤 길로 일본까지 갔는지, 어떤사람들이 조선통신사였는지, 그 중악대는 어떤형태였는지, 가서 어떤일을 했는지를 상세히들으며 생생하게 문화교류의 한장면을 떠올릴 수 있었다. (새삼스럽게도 강연을 들으며 ‘문화’라는 두음절로 간단히 설명되어버리는 수많은 산물들을 실제로 경험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대단한 일인지 크게 와닿았다.) 조선통신사의 일원이었던 음악가들은 어땠을까. 


그 시절에 타국으로 여행을 떠났던 이 음악가들은 얼마나 큰 부담감을 느꼈으면서도 큰 설렘을 품었을까. 이들의 연주여행은 훨씬 더 낭만적이고 위험천만했을 것이다. 낯선 도시의 소리, 묘하게 다른 사람들, 언제 어디서 위험한 일이 생길지 예측할수없는 곳에서 음악가들은 어떤마음이었을지, 그들이 타국의소리들을 듣고 온뒤에 그들의 음악세계는 어떻게 바뀌었을지가 궁금했다. 송지원 국악연구실장의 해설을 들으며 이런 조선통신사들의 음악적 경험을 상상해볼 수 있었고, 조선통신사의 여행을 음악적으로 구현한 임지선의 ‘흩어진 기억과의 만남’을 들으며 이를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었다.


처음으로 연주된 작품은 클라우스후버(Klaus Huber)의 첼로와 북을 위한‘무딘필봉’(’Rauhe Pinselspitze II’ for Cello and Buk). 이 작품은 가야금과북으로 연주될 수도 있다. 가야금과 북편성으로 먼저 작곡되었기때문인지 이곡에서는 찰현악기인 첼로를 가야금처럼 발현악기로 사용한다. 또한 손가락으로 첼로현을 울림이 크게 뜯는 것도 아니고 나무막대를 이용해 현을 뜯어 훨씬 더 건조한 소리가 났다. (무대와 내가 앉았던 객석의 거리가 멀어자세히 살펴보진 못했지만,거문고를 연주할 때 사용하는 술대인 것처럼 보였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첼로와 북의 앙상블에서 느껴지는 미묘한 구성의 차이였다. 첼로는 선율에 가까운 음들을 연주하고 북은 장단을 반복해서 연주했는데, 첼로의 선율이 직선적으로 앞으로 나아가는듯한 분위기였다면 북의 장단은 마치 같은 원을 계속 돌 듯 회전하는 느낌이었다. 첼로와 북이 같은시간의 흐름에 위치해있지않다는 이질적인 느낌이 들었고, 이 다른느낌이 창작차원에서 애초에 다르게 작곡된 것인지, 혹은 연주자들에게 형성된 연주습관에 의한것인지, 감상자였던 내가 국악기로 연주되는 곡을 들을 때 곧바로‘국악’이라는 프레임을 씌워버려서 형성되는 것인지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웠다. 이와 별개로 클라우스후버가 작곡할 때 한국적인 효과를 내기위해 선정한 효과들을 살펴보는 것도 감상의 재미 중 하나였다. 첼로에서 어느정도 음이 울린후에야 잔향을 크고 느린 비브라토로 처리해 농현을 표현한 것, 짧은 글리산도를 만들어 꺾어서 내리는 시김새를 표현한 것 등이 국악의 아티큘레이션을 첼로에서 구현한 것들이 특히 눈에 띄었다. 


피리와 생황을위한전주곡(Prelude for Piri and Reed Organ)은 루 해리슨(Lou Harrison)이 1960년대에 국악학자였던 이혜구를 만나 국악을 소개받고 쓴 작품이다. 곡의 시작부분은 마치 다스름처럼, 천천히 소리내기 쉬운 음들을 내며 음색을 찾아가는 과정같았다. 이 곡은 5음음계로 쓰였고,생황은 5음음계의 구성음들을 모아 화음을 내며 피리는 주된 멜로디를 연주했고 생황과 피리의 관계는반주와 독주같기도 했다.피리의 선율이 피리 자체의 음색적 특징을 잘 보여줄 수 있는 방식으로 쓰여서 마치 제목과 작곡가를 모르고 피리 선율만 들었다면 그냥 국악이라고 해도 믿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또한 피리 연주자 이승헌과 생황 연주자 김효영의 앙상블도 상당히 좋았다.권송택,이소영의 논문 “경계를 넘어서:루 해리슨의 음악에 나타나는 한국 음악적 요소 II”에 의하면 루 해리슨은 한국음악의 특징으로 가장 처음으로 주목한 것이 선율이었고,한국음악에서는 선율이 펼쳐나가면서 곧 형식을 이룬다고 말했다.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작곡했기 때문에 피리 선율이 눈에 띌 정도로 한국음악적이라는 느낌이 나올 수 있었던 듯 하다.


5종 대위법으로 편곡된 타령(A Taryong Arranged in Quintal Counterpoint)은 원곡과 무엇이 다른지 알기 어려울 정도로 영산회상의 8번째 곡‘타령’과 너무나 흡사했다. 같은 선율과 같은 리듬을 사용했고 제목에도‘Arranged’라고 직접 명시되어있듯‘편곡’임이 너무나 뚜렷했지만,모두 같은 선율을 연주하는 유니즌 외에도 분명히 대위적으로 선율들이 움직이는 부분들을 찾을 수 있었다. 특별히 이 곡이 연주된 후의 객석의 반응이 눈에 띄었다.연주회장의 뒤쪽에 앉아있어서 앞에 앉은 많은 관객들을 관찰할 수 있었는데, 이 곡이 언제 어떻게끝나는지 모두 정확히 알고 있는 듯한 분위기가 감돌았고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이 곡에 대한 즉각전인 반응을 보이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앨런 호바네스(Alan Hovhaness)의 진동 회화(Vibration Painting, Op. 226)는 한국음악적 요소를 그대로 본인의 음악에 반영했다기보다는 그가 흥미롭게 느꼈던 한국음악의 어떤 한 순간들을 아주 자세히 살피는 작품이었다.비유하자면 한국음악 특유의 시김새나농현 및 음향적 특성들을 현미경으로 확대해서 세밀하게 음의 흐름을 살펴보고,그걸 음악으로 창작한 느낌이었다.긴장도 높게 겹쳐지는 화음들이 상당히 많고 음들이 끊임없이유동적으로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연주가 무척 정교하고,특히 바이올린 파트의 고음역이 깨끗하게 처리되어 곡의 텍스쳐가 뚜렷하게 전달되었다.


진동 회화라는 제목은 상당히 생경하면서도곡의 음향적 효과와 매우 잘 어울렸다.끝없이 이어지는 긴 지속음들은마치 회화의 정지한 시간처럼 느껴졌고현악기들이느린 트릴처럼움직이는 음형들을 연주할 때 아주 얇은 선들이 우글우글댄다는 느낌을 주었는데이는 어떤 시각적 인상을 불러일으켰다.연필이나 붓으로 한 획을 그었을 때 그은 획은 우리의 눈에는 너무나 뚜렷한 직선으로 보이지만, 역시 현미경으로 자세히 살펴보면 굉장히 울퉁불퉁한 선으로 보이는데 이 작품에서 느껴지는 얇은 선들의 움직임이 이런 선을 묘사한 듯 했다. 호바네스의 ‘진동 회화’는 정지한듯한 시간,세밀한 필치가 돋보이는 작품이었고 연주가 이를 무척 잘 구현했다.



2부의 첫 곡이자 전체 공연의 마지막 곡이었던 임지선의 ‘흩어진 기억과의 만남’. 조선통신사 여정의 몇 장면들이 아주 생생하게 떠오르는 듯한 작품이었다.임지선이 2012-2013년에 교토에서 보았던 ‘마쯔리’와 최초의 조선통신사에 대한 다큐멘터리가이 곡의 창작계기가 되었다.‘흩어진 기억과의 만남’은조선통신사들이 왕에게 인사를 하고,바닷길을 건너가고,교토에 도착해 평온한 휴식을 취하고,소동의 춤을 보여주고,가족을 그리워하는 통신사들의 마음을 그리고,일본에 도착해서 준비했던 무대를 선보이는 축제까지총 여섯 장면으로 구성되었다.본격적인 연주가 시작되기 전 곡에 대한전반적인 해설과곡을 구성하는 여섯 장면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 있었다. 임지선은 각 장면들을 음악으로 어떻게 표현했는지,또 어떤 부분이 이 장면을 그려낸 것인지 설명하고 이를 화음쳄버오케스트라의 연주로 직접 들려주었다. 이런 해설방식은 이 음악을 어떻게 들어야하는지에 대한 훌륭한 길잡이가 되었다.


‘흩어진 기억과의 만남’에서 임지선은 장면들의 이미지를 청각적으로 너무나 잘 구현했다. 조선통신사들이 왕에게 인사를 하는 장면에서는엄숙함을 현악기군의 저음역으로 무게감있게 표현하고,생황으로 윤택함을 더했다.바닷길을 건너가는 장면에서는 파도의 움직임을 현악기군의 트릴과 현악,목관의 대위적인 선율로 이어가며 끝없이 엉키며 움직이는 파도를 잘 묘사했다.교토에 도착해서 편안한 휴식을 취하는 장면에서는느리고 움직임이 적은 선율로 나른한 단잠에 빠지는듯한 느낌을 자아냈다. 소동의 춤을 표현한 장면에서는 적은 편성으로 리드미컬한 부분을 구현하고,조선통신사들이 가족을 그리워하는 장면에서는 5음음계로 구성된 고요한 선율을 만들어 아득한 고향땅을 떠올리는 듯한 마음을 표현했다. 마지막 장면이었던 도쿄로 가는 행렬에서는 조선통신사들의 발걸음처럼 느껴지는 장중한 오스티나토 베이스 위에 발랄한 선율을 얹어서 행렬 안에 포함되는 춤과 즐거운 축제 분위기를 표현했다.


임지선의 이 곡을 구성하는 여섯 장면들은 조선통신사의 한 여정에 포함되는 것들이긴 하지만,각각 장면들만 떼어놓고 본다면 상당히 다른 장면들이다.그러나 마치 여행을 할 때 나도 모르는 사이에 다른 공간에 와있는 것처럼,한 장면에서 다른 장면으로 언제 이동했는지 곧바로 알아차릴 지 못할 정도로 연결이 무척 매끄러웠다. 어느새 여섯 장면이 다 지나고 곡이 끝나니 마치 조선통신사의 여정이라는 한 편의 드라마를 감상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음악과 음악가에게 국가는 모호하지만 완전히 벗어나기 어려운 토대이다.특히 창작의 영역에서 국가는 매우 중요한 주제로 다뤄지기도, 진부한 이야기로 치부되기도 한다.중요하지만 답을 내리기 어려운이 주제에 대해 화음은 구체적인 음악들을 제시한다.화음은 한국음악혹은 동양음악을 소재로 삼았던 클라우스 후버,루 해리슨, 앨런 호바네스의 음악을 들려주며 한국을 보는 시선이 어떠했는지를 보여주고,조선통신사의 여정을 그려낸 ‘흩어진 기억들의 만남’을 들려주어 한국을 보여주러 갔던 여정을 경험하게 해주었다.음악에 있어서의 한국, 그리고 한국의 음악은 늘 질문을 만들어내지만 정답을 허용하지 않는다. 이 크고도 모호한 개념들에 대해서는 결국 각자의 경험을 통해 나름의 답을 내릴 수 밖에 없다. 여전히 언어로 규정지을 순 없지만 화음의‘조선통신사’공연은 훌륭한 프로그램으로 한국을 직접 들어보고,한국의 음악과 음악에서의 한국에 한 발짝 더 가까워지게 해주었다. 



신예슬 arp273@naver.com
2014년 화음프로젝트 평론상, 2013년 제 15회 객석예술평론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