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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

강준일의 불의 전사 - 한국사회에의 성찰
이경분 / 2015-01-05 / HIT : 878
강준일의 불의 전사 - 한국사회에의 성찰
 
 
 
이경분(음악학)
 


 
 음악은 물질의 세계와 형이상학적인 세계를 연결해 주는 다리일지 모른다. 그렇지 않다면 수백년 전에 죽은 작곡가의 수백년 전 음악에서 시공간의 벽이 없는 듯, 마치 살아있는 듯 소통하는 것은 힘들 것이다. 뛰어난 지휘자, 연주자들은 이런 시공간을 초월하는 음악의 세계와 소통하고 청중에게 이를 체험하게 하는 무당 같은 존재가 아닐까. 푸르트벵글러가 지휘하는 베토벤 음악을 듣고 등골이 오싹해지는 경험을 했다는 증언이 있고, 필자 자신도 바그너의 음악극을 들으면서 어느 순간 인간존재의 본질을 체험한 느낌을 가진 때가 있었다. 이런 저런 경험으로인해 유럽의 전혀 다른 시간과 공간에서 만들어진 음악이 아시아의 한중일 삼국에서 수많은 추종자들을 거느리고 있는 것은 물질의 세계를 넘어 형이상학적 세계로 넘나들 수 있는 음악의 특성 때문이리라.
 
 물론 이것은 유럽에서 아시아로의 일방통행은 아니다. 한국의 시공간에서 체험한 굿을 염두에 두고 작곡한 윤이상의 오케스트라 음악 <무악>을 들으면, 그가 왜 20세기 음악대가로 칭송되는지 이해할 듯하다. 그의 음악은 무당의 굿이라는 한국적 시공간의 경험을 서구인들도 감지할 수 있는 추상적 음향세계로 형상화해 내고 있다. 이런 점에서 윤이상의 마지막 작품 세트 <화염속의 천사>와 <에필로그>도 마찬가지라 할 수 있다. <화염 속의 천사>는 민주화를 위해 자신의 몸에 불을 붙혀 분신자살한 꽃다운 젊은 청년들의 투쟁을 음악 속에 새겨 영원히 기억하고자 한 음악이다. 바로 이어지는 <에필로그>는 이들의 죽은 영혼을 위로하며 동행하고자 하는 <진도 씻김굿>의 “길닦음”과 같은 레퀴엠이다.
 
 2014년 10월 28일 광주 비엔날레 전시실에서 있었던 화음 페스티벌 4번째 연주회에서 강준일의 화음프로젝트 op.135 <불의 전사>를 들으면서 생각난 것은 윤이상의 <화염 속의 천사>였다. 이 곡은 음악적 형태나 표현방법에서 다르지만, 한국 민주화의 희생자를 기억하는 음악이라는 점에서 강준일의 <불의 전사>와 통하는 점이 있다. 오케스트라 곡인 <화염 속의 천사>보다 소규모작품인 4중주 <불의 전사>는 재일한국인으로서 독재정권시기 간첩으로 몰려 고통을 받았던 서승교수의 일그러진 초상화를 음악적으로 해석한 것인데, 무고한 사람을 간첩으로 몰아세웠던 한국현대사의 격렬한 시공간을 음향으로 조탁한 듯하다.
 
 20주년 특별전을 기획했던 올해 광주비엔날레는 홍성담 화백의 걸개 그림 <세월오월>이 검열로 인해 전시 되지 못하고, 이에 대한 연대의 의미로 다른 작가들의 작품도 회수되어 진통을 겪었다.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재독작가 정영창화백의 초상화 <서승>은 다른 3개의 초상화와 함께 전시되었다. 일그러져있는 <서승> 초상화는 실제의 얼굴을 그려 놓은 것이지만 마치 상상의 얼굴인 듯 다른 3개의 초상화와 구별되어 보였다.
 
 전시실 한가운데서 초상화들을 배경으로 연주된 <불의 전사>는 40여년 전 독재정권과 민주화 투쟁을 기억하게 한다. 두 대의 비올라, 첼로, 콘트라베이스라는 독특한 구성의 사중주 <불의 전사>는 캔버스의 어두운 색을 화염의 눈부신 불빛과 피의 붉은 색, 고통과 두려움의 검은 색 그리고 희망의 잿빛으로 상상의 음색을 변화시켜나간다. 고통의 반음계진행은 여기저기서 나타나 예리한 칼로 살을 베어내는 듯 아픔의 기억을 되살아나게 한다. 그래도 희망을 향해 나아가고자 하는 몸짓은, 원하는 날이 올 지, 희망이 기쁨으로 이어질지 불확실하지만 선명하다. 그리고 마지막 미래에의 물음은 앞을 알 수 없는 잿빛 또는 무채색으로 남는다. 희망을 염원하지만, 미래에 대한 확신을 할 수 없는 듯 <불의 전사>의 마지막 부분은 빗물이 땅 속으로 침잠하듯 사라진다. 민주화를 위한 커다란 희생을 치루고도 더 행복한 사회를 이루지 못한 현재 우리의 무능함에 대한 성찰처럼 조용한 물음으로 끝난다.
 
 작곡가 강준일은 자신만의 방법으로 물질세계와 형이상학적 세계를 이어보고자 일생동안 소리를 만들고 있는 장인과도 같다. 무용음악 ‘무영탑’으로 1975년 창작활동을 시작한 그는 외국유학 경험도 없는, 그렇다고 음대를 졸업한 적도 없는 한국에서 보기 힘든 독학파 작곡가이다. 40여년간 150여개의 작품을 꾸준히 발표하면서 첼로, 해금, 장고 또는 해금과 피아노 또는 사물과 오케스트라 등 한국악기와 서양악기의 조합으로 한 독자적인 사운드를 끈질기게 빚어내고 있다. 최근 국립국악관현악의 작곡가 시리즈에서 한국의 3대 창작 국악작곡가로 그의 작품세계를 크게 다루기는 했지만, 그를 국악작곡가로만 규정하는 것은 쉽지 않다.
 
 속도와 효율의 초강도 경쟁에서 물신숭배로 치닫고 있는 현재 한국사회는 거의 모든 불행지수에서 치욕적인 일등으로 화려하다. 자신의 행복, 아이의 행복, 가족의 행복보다는 남들이 제시하는 ‘수준’에 뒤치지 않기 위해 자신이 좋아하는 일, 아이가 좋아하는 일보다는 남들에게 근사하게 보이는 것에 목숨을 바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굳어진 왜곡된 경쟁의 논리는 보잘 것 없는 일이라도 일생을 바쳐 열정적으로 행하는 사람을 존경하는 문화가 생길 틈을 주지 않는다. 짧은 시간에 성공하는 허망한 스토리와 보여 주기 간판문화는 몰두와 깊이에서 오는 이름 없는 소소한 기쁨과 장인의 긴 열정을 우습게 만들어버린다. 그러기에 작곡가 강준일의 음악세계는 한국 사회의 불행한 풍토를 부끄럽게 여기는 젊은 추종자들을 매료시키고 있다.
 
 그의 존재와 작품은 독창성이란 스스로의 가능성을 깨우치는 것임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그에게는 자신의 독창성으로 한국전통과 형이상학적인 세계를 연결해주는 음악을 만들어내는 것, 그 이상 더 중요한 것이 없으리라고 감히 장담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