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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화음에게 100이란...
송주호 / 2011-12-06 / HIT : 460

화음에게 100이란...



글|송주호





 

내가 소위 ‘클래식’이라고 하는 음악을 들어온 지가 25년 정도 된다. ‘25년’이면 ‘사반세기’던가. 참 낯간지러운 표현이다. 사람들은 이렇게 ‘100’이라는 숫자를 모종의 기준으로 삼고 특별하게 여긴다. 내가 기억하는 음악계에 화제가 되었던 몇 가지 기념들도 이 숫자와 관련이 있다. 쇼스타코비치 탄생 100주년을 맞이했던 2006년에는 잘 연주되지 않는 그의 여러 교향곡들이 연주되었고, 메시앙 탄생 100주년이었던 2008년에는 그의 대표적인 실내악 작품인 <세상의 종말을 위한 사중주곡>이 수많은(!) 앙상블 연주회의 단골 레퍼토리가 되었다. 내년은 20세기 아방가르드 음악의 대명사 존 케이지가 기다리고 있으니, 기대를 가져도 될지. 이렇게 ‘100’이라는 숫자는 과거를 정리하고 성과를 기념하는 계기가 된다.
 
화음 챔버 오케스트라도 ‘100’을 맞이했다. 한국 작곡가에게 신작을 위촉하는 ‘화음 프로젝트’가 100번을 돌파했다는 사실은, 화음 챔버 오케스트라 스스로에게 뿐만 아니라 한국의 음악계에 긍정적인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그리고 숨을 고를 새도 없이 이 프로젝트는 계속 진행되어 내가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107까지 나아갔다. 화음 챔버 오케스트라가 탄생한 때는 1993년이지만 작품을 위촉하기 시작한 것은 2002년부터라는 것을 생각하면, 이러한 성과는 최근 10년간에 집중된 업적인 셈이다.
 
 
이렇게 한 연주 단체가 한국 작곡가에게 100곡 이상의 작품을 위촉했다는 것은 국내에 어떤 연주 단체에게도 찾아보기 힘든 성과이다. 게다가 화음 챔버 오케스트라는 소위 ‘현대음악 전문’을 표방한 단체가 아니라는 데에서 더욱 놀랍다. 어쩌면 이것은 화음 챔버 오케스트라가 ‘현대음악 전문’이 아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일 수도 있다. 생각해보면 대단히 특이한 일이다. 그들은 한국 작곡가에게 신작을 위촉하면서도 유럽의 작품은 20세기로 거의 넘어오지 않았다. (가끔 쇼스타코비치도 연주하지만, 결국 조성의 범위 안에 있다.) 서양의 다양한 곳에서 공부하고 그들의 문화를 익혔지만, 이러한 학습적인 바탕은 현대음악보다는 고전음악을 통해 발휘되었다. 즉, 화음 챔버 오케스트라는 ‘현대음악’이라는 선입견을 버리고 그 정서적 테두리에 얽매이지 않음으로써, 한국 작곡가들이 서양 현대음악의 연장선으로 보이기를 거부하고 한국의 작곡가를 통해 우리만의 정서를 만들어 내었다. 그들은 한국 음악을 서양 클래식과는 다른, 또 다른 우리만의 세계를 펼쳤던 것이다.
 
 
 
이제 이러한 화음의 성과를 통해 한국 음악의 역사적 해석을 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이번에 개최된 ‘제1회 화음 프로젝트 페스티벌’은 그 시작점이다. 2011년 11월에 열린 다섯 번의 연주회에서 그동안 위촉했던 곡 중 스물다섯 곡이 연주된 이 페스티벌은 세 가지 점에서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첫째는 마지막 연주회를 제외한 모든 연주가 화랑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화음 챔버 오케스트라는 ‘화음(畵音)’이라는 이름에서 나타나 있듯이, 그 초심은 그림, 조각 등 시각적 예술과의 만남에서 시작되었다. 20년을 바라보는 이 단체는 이 초심을 변함없이 간직하고 있다.
 
 
둘째는 지난 10년간 위촉했던 작품들의 재연을 중심으로 프로그램을 꾸몄다는 것이다. 많은 신작들이 한 번 연주되고 나서 사라지는 안타까운 경우를 많이 보곤 했다. 하지만 화음 챔버 오케스트라는 작품을 잉태한 주체로서 책임을 가지고 재연을 통해 꺼지지 않는 활력을 부여하였다. 이것은 ‘화음 프로젝트 페스티벌’이 한 앙상블을 기념하는 페스티벌을 넘어, 한국 음악의 역사에 기억되어야 할 사건임을 방증한다.
 
 
셋째는 무려 다섯 곡이 이 프로젝트를 위해 새롭게 위촉되어 각 연주회에서 연주되었다는 것이다. ‘화음 프로젝트 페스티벌’은 과거를 기념하는 자축의 자리로 그치지 않았다. 그들은 새로운 위촉작품을 통해 앞으로도 화음 프로젝트가 끊임없이 나아갈 것이라는 의지를 보여주었으며, 특히 20대의 젊은 작곡가에게 위촉함으로써 미래를 지향하는 단체임을 선언했다. 이렇게 다양한 연령층의 작곡가들로부터 작품을 위촉했기에, 화음 챔버 오케스트라는 한국 클래식 음악의 역사의 한 페이지를 쓰는 ‘펜’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기념은 과거를 정리하는 기회이기도 하지만, 미래를 모색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과거만을 돌아본다면 그 주체는 죽은 것이고, 미래만 본다면 내실이 없는 것이다. 하지만 화음 챔버 오케스트라는 ‘화음 프로젝트 페스티벌’에서 이 두 가지를 모두 보여주었다. 이것이 다음 연주회에도 잊지 않고 발걸음을 옮기는 이유이다.